리우데자네이루
별칭은 Rio. 브라질의 주요 항구도시이자 리우데자네이루 주의 주도
개요
남아메리카 남동부 대서양 연안에 자리잡고 있다. 1502년 1월 1일 포르투갈인 항해사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도시 이름은 이 항해사가 만의 입구를 강의 어귀로 착각한 데서 붙여졌다(포르투갈어로 리우는 강, 자네이루는 1월이라는 뜻). 1822~1960년 동안에 브라질의 수도였으며 197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리우데자네이루 주의 주도가 되었다. 면적:시 1,171㎢, 대도시권 6,464㎢, 인구:시 5,974,100(2003), 대도시권 11,226,729(2003).
자연·인문 지리
■ 도시특성
미항으로 널리 알려진 관광 중심지이며, 매년 사순절 전에 벌어지는 카니발 기간에는 밤낮없이 도시가 살아있어 도시의 축제 명성을 잘 볼 수 있다. 동시에 산업·무역·행정·금융·교육·문화·연구활동 등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경제 중심지이기도 하다. 미나스제라이스의 금 및 다이아몬드를 거래하는 무역 중심지, 국가수도, 포르투갈 왕실거주지 등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 자연환경
브라질 대서양 연안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지역 남회귀선 부근에 입지하고 있다. 중심부는 과나바라 만 서부해안의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만의 입구에는 슈거로프라고 불리는 기암이 있어 도시의 표지구실을 한다.
일반적으로 습윤한 열대기후이지만 지형, 해양에의 근접성, 남아메리카 남단부의 원추형 형상 같은 요인들이 강하게 작용한다. 가을과 겨울에는 남극에서 밀려오는 한랭전선의 영향을 받으며,여름에는 폭우로 급작스런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난다.
산악지역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습윤한 바람을 차단하여 많은 강우량을 기록한다. 기온은 고도, 해안과의 거리, 식생 등에 따라 다르며 연평균기온은 23℃이다.
도시구조는 크게 중심부·남부지역·북부지역·교외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심부는 구도시지역과 거의 일치하나, 일련의 도시구조 개편과 근대화의 영향으로 식민지 시대 건물과 기념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중심부는 도시의 역사적 변화를 반영하는 시기의 공공 건물이 많다. 시립극장은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본떠서 지었으며 교육부 건물은 1930년대 브라질 건축의 모더니즘 운동을 대표하고, 브라질은행 본사는 현대식 고층건물을 대표한다.
건축규모별 건축시기는 금세기초에 2~3층 주택, 1940년대 이전에 8~12층 건물,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20~30층 건물, 1970년대초에는 40~60층의 고층건물이 세워졌다. 중심부에는 쇼핑과 위락지구로 널리 알려진 리우브랑쿠 거리가 있다.
남부지역은 중심부와 북부지역에서 이주해온 부유층 주거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단독주택지구였으나 지금은 아파트 밀집지역이다. 높은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이 점차 이 지역 아파트로 몰려들고 있다. 반면 도시빈민들이 산사면의 슬럼 지역에 거주한다.
주요상업지구는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면서 1970년대에 구남쪽지역 서부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도시는 상콘라두와 바라다티주카의 신남부지역으로 계속 확장되었다. 바라다티주카는 영국식 신도시와 미국식 초호화 교외주거지를 혼합한 것 같은 상류층 계획주거지이다.
북부지역은 20세기 중반까지 촉수형으로 발전했다. 버스가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 되면서 거리, 주택, 기타 건물들이 밀집하게 되었다. 옛날 전차노선 주변지역과 교통량 밀집지역에 상업·서비스 시설이 들어섰으며, 티주카·메이에르·마두레이라 등이 북부지역 중심지로 떠올랐다.
1970년대말 북부의 티주카, 중심부, 남부의 보타포고를 잇는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북부지역은 평균 소득수준에 따라 사회적으로 분화가 심하다. 티주카와 그라자우는 부촌이지만, 엔제뉴노부와 린스데바스콘셀루스는 빈촌이며, 산사면과 구릉지에는 남부지역보다 많은 빈민촌이 형성되어 있다.
교외지역은 리우데자네이루 중심부로부터 북쪽으로 20km, 서쪽으로 50km 이상 뻗어 있다.
1950년대 이후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남부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외는 빈곤하고, 도로는 비포장이며, 하수도 공급률도 매우 낮다. 1960년대 주택계획의 일환으로 중심부와 북부지역의 도시 빈민들을 교외로 이주시키려고 했으나 철거민들의 저항에 부딪쳐 최근에는 현지개량방법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도시로는 바이샤다(저지대)라고 불리는 노바이과수, 닐로풀리스 등의 5개 도시가 있다. 이 도시들은 옛날에는 소규모 농촌 중심지였으나 리우 본토와 철도로 연결되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상파울루, 벨로리존테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대규모 공장들이 분포해 있다.
리우 본토에서 북쪽으로 가면 옛날 브라질 왕실의 하계 휴양지였고 1894~1903년 동안 리우 주의 주도였던 페트로풀리스라는 위성도시가 있다.
서쪽으로는 시장출하용 채소농업과 관광업이 성한 소도시들이 있다. 과나바라 만 동부해안에는 니테로이 등의 도시들과 이타보라이 등의 교외지역이 몰려 있으며 여기에도 대규모 빈민 교외주거지가 있다.
리우와 니테로이를 연결하는 다리·페리·모터보트·수중익선을 이용해서 리우데자네이루로의 통근이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이들 지역에서는 조선·섬유·식품가공·야금 등의 공장들이 입지해 있다.
■ 주민
리우데자네이루의 인구는 한때 도시 인구증가의 2/3를 차지했던 요인인 국내 인구이동의 결과로 증가했다. 1930년대 이래 정부 경제정책은 외국인 이민 억제와 대도시지역으로의 국내이주 장려라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옛 연방구 내 외국인 비율이 1890~1960년 기간에 30%에서 7%로 감소했다.
외국계 주민 가운데 나라별로는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출신이 많다. 수도 이전과 함께 다른 도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리우의 인구증가율은 점차 낮아지면서 자체 출생률에 기인하게 되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난 사람을 카리오카라고 부른다.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대부분이지만 많은 주민이 움반다라고 하는 토속종교 의식도 동시에 따른다. 인종은 흑인·백인·혼혈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촌에는 백인이 대부분이다.
■ 경제
리우 대도시권은 상파울루와 더불어 브라질 2대 산업지역으로 야금업·엔지니어링·의류·섬유·화학 등의 구산업 외에 대규모 조선소, 전자-컴퓨터 부문이 성장하고 있다.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주정부는 6개의 특별산업지구를 지정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로 산업발전의 새 장을 열었다. 별장건설은 도시내 건설업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이는 다수 미숙련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일자리가 되고 있다.
과거 국가 수도였던 관계로 대기업 본사가 많이 있으며, 수도 이전 후에도 여전히 이들 본사 대다수가 리우데자네이루에 그대로 남아 있다.
상파울루에 이어 2번째로 중요한 금융 중심지이며 증권시장 역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벨로리존테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를 수출하는 항구이고, 이동 물량면에서 브라질의 주요항구로 손꼽힌다.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편이며 소매업이 활발하다. 교통면에서도 브라질 제일의 항공 서비스 중심지로 국내선 전용의 산투스두몬트 공항, 국내선·국제선 용의 갈레앙 공항이 있다. 다른 지역에 연결되는 육상 교통은 버스·트럭·자동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상파울루와 벨로리존테에 연결되는 철도가 있으나 자주 운행되지는 않는다.
지하철은 1972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하여 1979년 첫번째 역을 개통했다.
■ 행정·사회
행정과 사회 환경면에서도 브라질 중추도시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1984년 이후 4년마다 선출되는 시장이 시정을 담당하며, 입법권은 24개 행정구역에서 비례 선출되는 시의회에 있다. 교외 지역을 비롯해서 대도시처럼 급속히 개발되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도시 공공 서비스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상하수도, 도시가스, 전기 및 전화 서비스를 공기업이 담당하고 있는데 공급확대와 서비스의 질적 향상 등은 아직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오염이 점차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으나 기후가 좋아서 건강상 심각한 문제는 아직 없다. 다만 빈민촌의 경우 영양실조, 위생시설 부족 등으로 발생하는 질병이 문제가 되고 있다.
주민의 문자 해독률은 10세 이상에서 90%에 달해 전국 평균을 상회한다. 2개의 주요대학교가 있고, 주정부는 리우데자네이루주립대학교와 많은 중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정부출연 연구소가 물리학·원자에너지·지질학·지리학·통계학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문화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의 문화 중심도시로서 문화·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많다.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 브라질 과학원, 국립예술박물관, 국립역사박물관, 인디언 박물관 등 많은 예술·문학·과학 기관이 있다. 도서관도 많지만 이중 1775년 리스본 지진 이후 포르투갈에서 가져온 아주다 왕립도서관 소장품을 진열한 국립도서관(1810)이 유명하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명승지로는 리우의 상징인 그리스도상이 있는 코르코바두 산, 슈거로프 산, 동물원과 국립박물관이 있는 킨타다보아비스타 공원, 식물원, 티주카 국립공원이 있다.
여론매체로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이 있고, 중앙 일간지 2종을 포함하여 많은 일간지가 발행된다.
해마다 4일간 계속되는 리우 카니발은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통 축제일 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는 축구로, 20만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이 있다.
역사
■ 식민지시대
포르투갈이 처음으로 브라질을 탐험한 지 몇 년 후 브라질 실거리 나무류를 찾아나선 프랑스 상인이 프리우 곶 연안에서 과나바라 만의 해안과 섬에 이르는 기름진 지역을 탐험했다.
이 지역은 경제적·전략적 중요성이 이전부터 잘 알려졌던 곳이었다. 이들 섬 가운데 하나를 프랑스가 남극프랑스라고 하는 식민지로 건설했다. 브라질에서 프랑스를 축출하고자 했던 포르투갈은 1565~67년의 2년에 걸친 유혈전쟁 끝에 프랑스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새로운 도시입지를 찾기 위해 내륙으로 들어갔다.
포르투갈인 정착자들은 포르투갈 왕이 분배한 기름진 토지에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식민지에 주요 소득원이 되었다.
1660년에 이 지역은 브라질 남부사령관령의 소재지가 되었다. 17세기말 인구는 8,000명으로 늘어났고, 그중 2/3는 인디언과 흑인 노예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18세기초 브라질은 금과 다이아몬드광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는 식민지 경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고 유럽으로부터 대규모 이민을 촉진하여 백인 인구가 증가했다. 이전의 촌락이 1749년에는 인구 2만 4,000명의 도시가 되었다.
1763년 식민지 수도를 바이아에서 리우로 이전했다. 18세기말에는 전체 식민지 경제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광산도 쇠퇴하고 세계 설탕시장을 놓고 벌인 중앙아메리카와의 경쟁으로 위기에 처했다. 1796년 리우 항을 통해 이루어진 수출은 1760년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커피를 생산하게 되고 1808년 브라질에 포르투갈 왕실이 다시 옮겨오면서 식민지는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이 왕국으로 된 1815년경 리우데자네이루는 외국인을 수용할 만큼 성장했다. 이때 도시의 초기 모습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1803~18년까지 600채의 주택과 100채의 별장(대지주저택)이 건축되었고, 많은 옛 건물들이 복구되었다. 거리가 밝아지고 포장되었으며, 토지개간, 새 도로건설 및 왕립출판사·왕립도서관, 산투주앙 극장, 예술원, 식물원, 브라질은행 등의 기관설립 등이 이루어졌다.
왕인 주앙 6세가 1821년 포르투갈로 돌아갈 당시 리우의 거주자는 11만 명에 이르렀고, 1만 3,500채의 건물이 들어섰으며, 도시는 북쪽과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1년 후 브라질은 독립했다.
■ 독립후 도시
리우데자네이루 주에서 커피 경작이 확대되면서 도시는 새롭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브라질에서 커피·목화·설탕·고무 수출이 늘어 나면서 과거의 식민지 흔적은 사라져 갔다. 1829년 당시 가장 아름다운 거리였던 루아두오비도르에서 달구지 교통이 금지되었다.
1838년 최초의 공공교통수단(말이 끄는 버스), 1868년 최초의 시가전차가 각각 도입되었고 1835년 증기선이 다니기 시작했다. 1852년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고 1854년 가스등과 무선전보가 등장했다. 1864년 하수도, 1877년 전화 서비스의 공급이 각각 이루어졌다.
■ 공화국시대
1889년 브라질 공화국 수도가 된 리우데자네이루는 이미 주요도시로 성장했다.
1890년 인구조사에서 인구 52만 명, 면적 218.6㎢로 브라질 최대 도시이자 세계 최대 도시 대열에 들어섰으며 1891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연방구가 되었다. 프란시스쿠 대통령(1902~06)이 연방을 통치하는 동안 현대적 도시로 탈바꿈했다.
관료와 기술자들의 노력으로 풍토병인 황열병과 천연두가 퇴치되었고, 보건환경이 개선되었다. 거대한 늪지에 배수시설을 갖추었으며 슬럼 철거, 거리 개량 등이 이루어졌다. 오늘날까지도 중심부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1912년부터 리우브랑쿠로 불림)인 중앙로가 이 시기에 개통되었고 남부해안지역을 따라 달리는 베이라마르 거리가 매립지 위에 건설되었다.
연방구 인구가 1920년경 100만 명을 넘어 1940년에는 175만 명까지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연방구의 산업설비가 거의 3배나 증가했고 최초의 고층건물이 등장했다. 주거지가 동해안으로 확장되면서 북쪽 일부지역은 산업과 저소득층 주거지역으로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부동산 투기에 따라 지주·산업부문·금융부문의 이해관계가 뒤엉키고, 자동차 교통이 보편화됨에 따라 도시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즉 중심부에 초고층 건물이 세워졌고 고속도로 확장이 이루어졌으며, 가옥이나 소규모 아파트 대신 대규모 주거건물이 들어섰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도심으로부터 빈민을 축출하려는 압력이 더욱 심해졌다. 출처: 브리태니커 Macropaedia| 金容倉 참조집필
리우데자네이루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포르투갈어: Rio de Janeiro 히우지자네이루[*], [ˈhiw dʒi ʒʌˈnejɾu], 문화어: 리오드쟈네이로, '1월의 강')는 브라질 남동부 대서양 연안에 자리한 도시로 리우데자네이루 주의 주도이다. 브라질(1763년-1960년)과 포르투갈 왕국(1808년-1821년)의 수도이기도 했다. 쇼로, 삼바, 보사노바를 낳은 곳으로 유명하다. 인구는 약 800만 명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되는 카니발 (사육제)는 브라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축제이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해안 경관은 상당히 수려하며, 나폴리, 시드니와 더불어 세계 3대 미항의 반열에 올라 있다. 카니발 뿐 아니라 이 수려한 해안선을 보러 찾아오는 관광객도 상당수이다.
대한민국에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인근의 상파울루까지 대한항공을 이용한 후, 상파울루에서 육로나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야 한다. 한국시각으로 2009년 10월 3일 새벽에 2016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볼 만한 곳
- 코파카바나 해안
- 이파네마 해안
- 코르코바두의 예수상
- 마라카냥 스타디움
- 팡지아수카르(Pão de Açúcar)
- 시립식물원
- 리우-니테로이 교
- 니테로이 현대미술관(니테로이)
자매결연 도시
- 사우디아라비아 지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
- 콜롬비아 보고타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
-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 포르투갈 리스본
- 브라질 산투스
- 브라질 상파울루
- 대한민국 서울
- 대한민국 부산
- 캐나다 몬트리올
- 브라질 니테로이
- 일본 고베
- 쿠바 아바나
- 미국 로스앤젤레스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La lluvia( The Rain)/ Alpamayo
리우데자네이루카니발(리오의 삼바축제)중 퍼레이드 사진들
카니발의 역사와 브라질 삼바 카니발의 의의
Carnaval(까르나바우)란, Carne(고기)+Levare(멀어지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가톨릭의 금육, 절제의 기간인 사순절을 앞두고 미리 맘껏 마시고 놀아도 묵인해주는 종교적 통념에서 생겨난 행사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축제는 19세기 빅토리아 사회에서 따온 것으로 파리나 베니스 등이 카니발의 표본이 되곤 했다.
그런데 1822년 포르투갈로 부터 독립한 브라질의 카니발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데에는 브라질인들이 갖고 있는 열정적인 국민성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정부에서 앞장서서 이 행사에 막대한 지원과 홍보를 통해 '카니발=브라질'이라는 세계적인 공식을 만들어낸 것이 더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500년 포르투갈에게 침략 당해 사탕수수 농장으로 내몰린 대부분의 브라질 인디오들은 북이든 뭐든 두드리며 박자를 맞춰가며 부르던 빠고지(pagode)라는 음악 장르에 아프리카에서 사온 흑인 노예들과 함께 침략과 억압의 설움을 달래며 춤을 추던 것이 바로 삼바 춤의 모태이다.
말하자면 삼바 춤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 힘겹고 고단한 삶을 함께 이겨내기 위한 즐거운 현실개척 의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런 농장마다 동네마다의 산발적인 삼바 춤 경연대회를 1822년 독립과 함께 정부가 나서 삼바춤+카니발을 조합하여 오늘의 세계적인 브라질 삼바 카니발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삼바 카니발은 축제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 모두에게 엄청난 열정과 체력을 요구한다.
일부에선 지나친 노출과 외적 화려함으로 인한 무질서를 걱정하지만 삼바 카니발 공연은 한 팀당 수천명의 무용수가 1년간 준비한 것을 오로지 1시간 동안 다 보여주는 공연으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질서정연함의 대표적인 축제라 할 수 있다.
20일부터 25일까지 오로지 삼바 삼바, 전 국민의 축제
삼바 카니발 시작을 앞둔 일주일 전에는 '길거리 속옷 행진'을 통해 분위기를 띄운다. 2003년 뉴욕에서 시작한 이 <속옷의 날>은 카니발 시작 한 주 전에 남녀 속옷 모델들이 그야말로 속옷만 입고 일주일 동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길거리, 터미널, 시장, 플랫폼 등을 행진한다. 이는 일상 속에서 감춰져온 속옷의 노출을 통해 노출이 얼마나 편안하고 관능미를 제공하는가를 대중에게 직접 보여주면서 카니발의 시작을 알리는 예비 행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Unidos do peruche 삼바 학교의 첫 행진으로 개막된 2009년 상파울루 카니발에는 총 14개 삼바 학교가 출전하여 경합을 벌이게 되고, 24일에는 공식적인 결승전을 거쳐 최종 우승팀을 뽑게 된다. 그리고 25일에는 최종 우승팀과 우수팀의 피날레 퍼레이드 공연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뒤 26일부터 모든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브라질 삼바 카니발의 도시별 특징
상파울루 카니발은 경제 산업 중심 도시답게 대체적으로 각 삼바 학교의 경연장다운 행진이 중심이 되고,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은 세계적인 관광지의 특성을 살려 가장 멋진 삼바걸들을 등장 시킨 화려한 퍼포먼스가 일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진기자 방송기자가 가장 많이 모여들어 실시간으로 카니발을 보도하는 곳으로 인터넷상이나 TV로 보여지는 화려한 삼바걸 삼바춤은 대부분 리우데자네이루의 모습이다.
그러나 세계인들은 자주 볼 수 없지만 브라질인들에겐 가장 익숙한 카니발 도시는 바로 사우바돌 카니발이다. 브라질의 옛 수도로 가장 전통적인 문화를 간직한 사우바돌 카니발은 거의 모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그야말로 브라질다운 축제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기간 동안 사우바돌 출신의 유명 가수들이 대거 참여하여 카퍼레이드를 펼치는 동안 직접 삼바 노래를 부르고 지치도록 함께 춤을 추며 소박하지만 열정적인 카니발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닌 축제의 주인으로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진정한 브라질인의 카니발 축제의 장이 되는 것이다.
2009 카니발, 세계경제침체 여파로 인해 걱정반 설렘반
올해는 또 어떤 팀이 얼마나 새롭고 화려한 공연으로 우승팀이 될 것인지, 그 많은 삼바 무용수 중 누가 최고의 삼바걸이 될지 설렘 속에 출발한 브라질 카니발이지만, 달러화 상승 및 세계 경제 침체 여파로 인해 국제관광객의 입국과 지출이 얼마나 될지 사실은 그것이 더 궁금하고 걱정스러운 2009년 카니발임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축제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공연자와 관객은 손익분기점 계산 따위로 주춤하는 기색 없이 여전히 여느 해와 다름없이 삼바 카니발을 즐기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작렬하는 남미의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미친 듯이 삼바춤을 출 수 없다면, 아!, 브라질은 얼마나 시시할까. 한국의 겨울보다 오히려 더 추운 브라질의 여름이 되지 않을까?
원문 : 브라질 카니발 열기, 남미의 태양을 녹이다.
원문주소/http://kofice.or.kr/c30_correspondent/c30_correspondent_02_view.asp?seq=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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