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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의 이력 - 저인망어선 제86 우성호의 납북

호남인1 2010. 4. 10. 19:02

출처 : 95년 천안함 '교신기록'은 진실을 말했다 - 오마이뉴스

1995년 5월 30일, 백령도 서북방 40Km 북한 측 군사 수역에서 인천선적 저인망어선 제86 우성호(100톤급, 아래 우성호)가 북한 경비정의 총격을 받고 피랍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 당시 선장 김부곤씨 등 선원 8명이 타고 있었던 우성호는 북한경비정의 총격 과정에서 2명이 사망하고 생존 선원들과 선박은 북한 당국에 나포됐다.

 

우성호 선원 송환 문제는 그 해 내내 남북한 당국 간에 첨예한 쟁점사항으로 대두됐으며, 생존 선원 5명과 사망한 선원 3명(1명은 억류과정에서 병사)의 유해는 7개월 만인  1995년 12월 27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우성호 피랍 사건 직후 국방부는 "우성호와 해경 간의 교신내용을 분석한 결과 우성호는 항법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침반에 의존·항해를 해왔다"며 "그러나 이 나침반마저 고장이나 항로를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드러난 사고 전말은 국방부의 발표와는 사뭇 달랐다. 당시 해경이 공개한 경찰 전보용지에는 우성호와 우성호의 항로를 안내했던 해군 함정 간의 교신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교신기록에 따르면 당시 해군 함정은 우성호의 귀항 예정항로상을 항해하던 다른 상선 (한국선적 4000톤급 챌린저호)을 우성호로 오인하고 "현재 코스를 75도로 잡아라"고 알린 후 "그대로 코스를 잡고 항해하면 된다"고 지시, 결국 우성호가 북한 해역으로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당시 우성호의 항로를 잘못 지시한 해군 함정이 바로 천안함이다. 결국 당시 해경이 공개한 우성호와 천안함 사이의 통신기록은 사건을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