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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나무

호남인1 2014. 8. 1. 22:19

 

 

 

 

 

한국의 소나무

 

 

 

 

1. 괴산 청천면 삼송리 왕송(王松 龍松)

 

천연기념물 290호

• 서식지/소재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산250

• 외형(크기, 길이, 높이) 높이 12.5m|가슴높이둘레 4.7m

• 수명 610년

• 천연기념물(보호수) 지정번호 천연기념물 제290호

• 천연기념물(보호수) 지정일 1982년 11월 4일 - 해제예정(태풍 볼라벤(Bolaven)으로 인하여 도복함)

 

괴산 삼송리 소나무는 키 13.5m, 가슴높이 둘레 4.91m이고, 나이는 약 600년으로 추정하며,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소나무 숲에서 자란다. 이 숲은 마을을 지켜주는 성황림(城隍林)으로, 마을 사람들은 숲에서 가장 큰 소나무를 당산나무로 삼아 해마다 정초에 한 해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제사를 올려왔다.

 

 

이 숲에서 가장 커서 ‘왕소나무’라고도 부르는 삼송리 소나무는 줄기의 모습이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 ‘용송’이라고도 하며, 나무껍질은 적송이라 불릴 만큼 붉은색을 띠고 있다.

 

“소나무 이름에 얽힌 이야기

중국 진(秦)나라 진시황이 길을 가다 소나기를 피할 수 있게 한 나무에 공작의 지위를 주면서, 그 나무는 목(木)자와 공(公)자가 합쳐진 송(松)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따라 송나무로 불렀다가 소나무로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나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라는 뜻의 ‘수리’나무에서 ‘술’나무가 되고, 다시 ‘솔’나무로 불렀다가 소나무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괴산 삼송리의 소나무는 마을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작은 소나무 숲 가운데 서 있으며 나이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13.5m이고, 가슴높이의 둘레는 4.91m이다. 이 숲에서 가장 커서 왕소나무라고 불리며,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용송(龍松)이라고도 한다.

근처에 이와 비슷한 노송 3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삼송리라 하였는데, 지금은 왕송만 남아 있다고 한다. 매년 1월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새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한다고 한다. 괴산 삼송리의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오랫동안 주민들의 보호를 받아왔으며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600살쯤 된 것으로 짐작되는 왕소나무는 키 13.5m, 줄기 둘레 4.91m의 매우 듬직한 수형의 소나무다. 땅에서 3m쯤 되는 높이에서 나무 줄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지를 펼친 왕소나무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뿐만 아니라, 수천의 가지들은 하나같이 기묘하게 비틀리고 배배 꼬이면서 뻗어나갔다. 급하지 않고, 웅장하되 매우 기묘하다. 신화 속의 용이 하늘에 오르는 형상이 꼭 이렇지 싶다.

‘용송’(龍松)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붙은 것도 그래서다. 보면 볼수록 이 나무를 왜 ’왕소나무‘로 부르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만큼 장엄한 모습이다.

 

2년 전 태풍으로 쓰러져 고사(枯死)한 천연기념물 290호 '괴산 삼송리 소나무'(일명 왕소나무)가 보존작업 후 문화재 해제 절차를 밟는다.

문화재청과 괴산군은 1억원(국비 7000만원, 지방비 3000만원)을 들여 왕소나무 주변 환경정비 사업을 벌인다.

괴산군은 문화재청 승인을 받아 현대나무병원을 공사업체로 선정해 9월13일까지 보존작업을 추진한다.

왕소나무는 마을 주민이 요구한 대로 땅 위로 1m가량 들어 올린 뒤 살균·살충제를 주입하고 방부 처리할 계획이다.

이 보존작업이 600년간 마을 수호수 역할을 한 왕소나무를 영구 보존한다고 할 수는 없다.

괴산군 관계자는 "고사한 왕소나무는 보존작업을 거쳐 원형을 유지하겠지만 영구 보존을 장담할 순 없다"며 "보존작업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사 판정을 받은 왕소나무는 보존작업이 끝나면 문화재 지정 해제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은 문화재청장이 문화재위원회 해당 분야 분과위원회(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 위원 또는 전문위원 등 관계 전문가 3명 이상에게 해당 문화재의 조사·검토를 요청해야 한다.

 

천연기념물 지정 해제를 하면 해제 취지와 내용을 관보에 고시하고 소유자는 해제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지정서를 문화재청장에게 반납해야 한다.문화재청이 1962년부터 천연기념물을 재정비한 이후 지금까지 충북에서는 8점(동물 4점, 식물 4점)을 해제했다.

왕소나무는 2012년 8월28일 태풍 볼라벤의 강풍으로 쓰러져 문화재 당국이 회생 작업을 벌였으나 수세를 회복하지 못해 지난해 11월 고사 판정이 내려졌디.

 

화산리 반송(盤松)

 

 

 

 

 

2. 문경 농암면 화산리 반송(盤松)

 

천연기념물292

소 재 지 : 경북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 942외 3필

 

 

반송(盤松)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소나무와 비슷하지만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원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없고 전체적으로 우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문경 농안면의 반송은 화산리 계곡으로 들어가는 산길 옆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이는 2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24m, 둘레의 5m의 크기로 가지 가운데 하나는 죽었으며 가지가 사방으로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받침대를 설치하였다. 나무의 줄기가 여섯갈래로 갈라져서 육송(六松)이라 부르기도 하며, 나무를 베면 천벌을 받아 죽는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문경 농암면의 반송은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경시와 국립산림과학원,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의 ‘반송’ 우량 유전자(Gene)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 기후변화 등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DNA 추출 및 복제나무를 만들어 유전자를 보존할 계획이다.

화산리 반송은 줄기가 여섯 갈래로 갈라져 육송(六松)이라 부르기도 하며, 나무를 베면 천벌을 받아 죽는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민속적, 생물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아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와 같이 문화적, 역사적, 경관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천연기념물을 영구 보존하기 위하여 문경 화산리 반송과 똑같은 나무를 복제하고 DNA를 추출 장기보관하는 방법으로 화산리 반송의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할 계획이다.

 

농암면 화산리 반송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이용되는 방법은 무성증식법인 접목을 이용한 유전자 복제기법으로 똑같은 복제나무를 만들어 보존하게 된다.

 

문경시와 국립산림과학원, 문화재청은 문경 화산리 반송과 같이 우리의 얼과 정서가 깃든 소중한 자원이 유지·보존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체계 구축과 보존원 조성 및 DNA지문 작성에 의한 식물법의학 증거자료 확보 등 적극적인 유전자 보존을 위하여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3. 속리 정2품송(俗離 正二品松)

 

천연기념물103호

공식명칭: 속리 정이품송

한자명칭: 報恩 俗離 正二品松

주소: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241외

종목: 천연기념물 103

전화번호: 043-540-3392

지정일: 1962.12.03

 

 

보은 속리 정이품송은 키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고, 나이는 600년으로 추정하는데,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정이품송은 조선 세조가 법주사에 갈 때 가마가 나뭇가지가 걸리자 가지를 들어 행차를 도왔다 하여 정이품 벼슬을 받은 나무로 유명하다. 삿갓 모양의 아름다운 소나무였으나 1993년 강한 바람에 서쪽 가지가 부러져 모습이 상했다.

 

“왕의 행차를 도와 벼슬을 한 소나무”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조선의 세조는 하늘이 노한 탓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집권 내내 종양과 피부병으로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전국의 이름난 약수와 온천을 찾아 헤매던 세조는 어느 날 약수로 유명한 법주사 복천암을 찾아 가고 있었다.

세조는 행렬이 한 소나무 아래를 지날 때 가마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유를 물으니 나뭇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세조는 고개를 내밀고 “무엄하구나! 연(輦) 걸린다!” 하고 꾸짖으니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기특히 여긴 세조는 소나무에게 친히 옥관자를 걸어주고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소나무를 ‘정이품송’ 혹은 ‘연걸이소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정이품송 아래에서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와 노인이 이 나무를 안고 돌면 죽을 때 편히 세상을 뜰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상세설명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리하여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이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 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살아오는 동안 각종 재해를 입었는데, 특히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소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하였다.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이어서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에게 섬기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천수 누리소서"…

정이품송 강령기원제 열려 (보은=연합뉴스)

 

충북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103호)의 무병장수를 비는 강령기원제가 2일 이 나무 앞에서 열렸다.

 

법주사가 마련한 이 행사는 영생을 기원하는 법회에 이어 밑동 주변에 막걸리를 뿌려 생력을 북돋워주는 순서로 진행됐다.

2014.6.2 <<보은군 제공>> bgipark@yna.co.kr

 

 

 

 

충북 보은군이 21일 현대나무병원에 의뢰해 피해가 심한 상층부 중점 방제를 비롯해 ‘정이품송’ 솔잎혹파리 방제를 위해 주변 토양과 나무에 대한 방제도 함께 실시했다.

 

 

 

 

 

 

 

후계목은 천연기념물 103호인 정이품송을 충북도산림환경연구소가 2002년 정부인송(천연기념물 352호·보은 서원리)에 인공 수분시켜 1년 뒤 받은 씨앗을 키워온 나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최근 충북도 산림환경연구소에는 정이품송 후계목 식재와 관련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소원성취, 사업번창, 자녀출산, 건강기원 등의 다양한 이유로 식재 가능성을 문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충북도산림환경연구소측은 우수품종의 대량 증식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개인들의 기념식수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소측은 지난 1980년부터 자체적인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어 종자 채집과 연구비 확보 등 체계적인 증식관리에 어려움을 겪다 지난 2007년 후계목 연구에 관한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연구비의 70%를 국비로 지원받고 있다.

 

이를 통해 연구소 내에 현재 보관하고 있는 후계목은 모두 300본이다. 지난 1998년 정이품송에서 떨어진 씨앗을 재배해 키운 나무 150본과 지난 2002년 정이품송과 정부인송을 인공 수분시키는 방법으로 생산된 후계목 150본 등이다. 

 

이 가운데 형질이 불량한 묘목은 도태하는 방식으로 우량개체를 선발하고 있다. 병충해로 상순이 상한 후계목은 도태시켜 조경수로 관리하기도 한다.

 

충북도 산림환경연구소 이귀용 임업시험과장은 "천연기념수의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노거수로 언제 고사될지 모르는 위기에 있어 후계목 육성이 중요하다"며 "정이품송도 현재 나무의 40% 정도만 살아 있는 상태여서 후계목의 우량개체 선발과 육성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후계목이 이전의 정이품송처럼 제대로 된 외형을 갖추려면 10년 이상이 소요되고 후계목이 많아도 여름 가뭄과 병해충에 의해 고사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증식관리에 어려움이 따른다"며 "전국 곳곳에서 충북의 정이품송 후계목을 만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 김수미기자

 

 

 

 

 

 

 

4. 예천 사부리 소나무(醴泉 沙夫里松)

 

 

경북기념물 111호

• 한자 醴泉沙夫里―

• 서식지/소재지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사부리 817

• 외형(크기, 길이, 높이) 높이 8m

• 수명 200년

• 천연기념물(보호수) 지정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제111호

• 천연기념물(보호수) 지정일 1995년 6월 30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11호. 높이는 8m에 달하고, 수관폭(樹冠幅)은 동서가 20m, 남북이 15m인 노거수로 나무의 나이는 약 200년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는 임진왜란 때 중국의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소나무의 모양은 반송의 형태이나 가지의 뻗은 각도가 반송은 예각인데 비하여 이 나무는 거의 직각인 특이한 형태로서 소나무와 반송의 중간계층이라는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되게 되었다. 몇 개의 가지가 잘린 상태이나 전반적으로 생육이 양호하다.

 

 

예천 사부리 소나무의 나이는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8m로 나무의 모습이 밑동부터 가지가 갈라지는 반송(盤松)형태이다.

 

그러나 가지의 뻗은 각도가 반송은 비스듬히 자라는데 비해 이 나무는 거의 직각형인 특이한 형태로서 소나무와 반송의 중간계통의 변종으로 보여진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1592) 때 중국 명나라 장군인 이여송이 벼루 속에 소나무씨를 넣어 가지고 와서 심었다고 한다.

 

지금 나무의 모습은 통행에 지장이 있던 뒤쪽 몇 가지가 잘려 균형을 잃었을 뿐 겉모양은 공중에 낙하산을 펼쳐 놓은 듯하다.

 

이 나무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평화를 빌던 당나무로 보호되고 있다. 예천 사부리 소나무는 형태가 특이하고 소나무품종 연구에 귀중한 학술적 자료가 되고 있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5.예천 천향리 석송령(醴泉 泉香里 石松靈)

 

 

천연기념물 294호

소 재 지 :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외 3필

지정면적 : 1주(314㎡) 지 정 일 : 1982-11-04

 

 

예천 천향리 석송령은 키 11m, 가슴높이 둘레 3.67m이고, 나이는 약 600년으로 추정하며, 석평마을 마을회관 앞에서 자란다. 600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마을 앞 석간천으로 떠내려 오던 어린 소나무를 나그네가 건져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뒤 마을 주민 이수목(李秀睦)이 ‘석평 마을의 영감(靈感)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장학금도 나눠주고 세금도 내는 소나무”

마을 주민 이수목은 이 소나무에 자신의 토지를 물려주고 등기를 내줘, 석송령은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됐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나무에 특별 관리비 500만 원을 하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돈과 석송령 소유의 토지, 위탁경작하는 사람들이 내는 소작료 등을 기금으로 한 ‘석송령장학회’를 구성하여 지역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또 마을 노인들은 석송계를 만들어 석송령과 후손이 없는 이수목의 묘소를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예천군에서는 석송령을 군을 상징하는 나무로 선정했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석송령 아래에 모여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나무가 사람처럼 세금을 내고 장학금을 주는 경우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특이한 경우다.

 

 

석평마을의 마을회관 앞에서 자라고 있는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은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0m, 둘레는 1.9m, 3.6m이다. 나무는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산모양을 하고 있으며,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 된 기둥을 세워 놓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6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서 이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석평마을에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자신의 토지 6,600㎡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내주어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었다.

 

또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500만원을 하사한 일도 있다.

 

마을에서는 석송령의 재산으로 장학금을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주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화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은 마치 사람처럼 재산을 가지고 세금과 장학금을 내는 등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나무로 우리민족의 나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수령(樹齡)은 6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0m,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1.9m, 3.6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쪽이 23.3m, 남·북쪽이 30m이다. 이 소나무가 위치해 있는 천향리마을은 예천읍에서 영주로 가는 길 왼편에 있고 그 마을회관 앞뜰에 서 있다.

 

소나무는 원래 원줄기가 위로 솟아나는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이 석송령은 굵은 곁가지가 멀리 뻗어 남북방향으로 30m에 이르고 있다.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시키기 위해서 석주(石柱)를 곳곳에 세워 주고 있다.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소나무는 인격이 부여된 특이한 존재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볼 수 없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나무가 소유한다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동리회관건물도 석송령의 소유토지 위에 건축된 것이다.

 

이 소나무는 해마다 농지를 경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고 그것을 은행에 저축하고 있다. 땅을 소유하고 있으니 제반 세금을 또한 내고 있다. 즉 재산세 지방세 방위세 등을 납부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선정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고 박정희대통령은 이 나무에 500만원을 하사한 일이 있고 이것은 당시의 가치로 보아 큰돈이었다. 이것이 장학기금이 되었다.

 

정월보름날 새벽에 동민들은 이 나무 아래에서 동제를 올려 평안을 비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가 동리를 수호해 주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동제가 끝나면 아주머니들이 막걸리가 든 술병을 들고 이 나무의 주변을 돌면서 술을 땅에 뿌린다. 소나무는 술의 효과를 얻어 더욱 씩씩하게 자란다는 것도 사람들은 믿고 있다.

 

동리 노인들은 이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송계(松契)를 만들고 있다. 평탄한 곳에 서 있는 생육공간은 충분한 편이다.

 

 

석송령은 1982년 천연기념물 294호로 지정됐다. 석송령은 반송으로 1만가지의 가지가 열린다고 해서 만지송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수십마리의 용이 승천을 하기위해 소나무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세금을 내는 것도 화제지만 특이한 것은 소나무 가지마다 용틀임 몸짓과 남근가지, 여자가슴 등의 형상을 연출하고 있다.

600년 동안 온갖 풍파를 이겨낸 상흔처럼 축 늘어진 가지마다 힘겨워 세월을 이겨 나갈 수 있게 보존회에서 디딤돌을 마련해 가지마다 나무를 받쳐 주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소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가 바로 석송령인 것 같다.

굵고 웅장한 가지마다 세월을 무색케 하는 핏빛을 띠며 건강함과 건재함을 과시하며 앞으로 천년의 세월을 더 이겨 나갈 태세다.

밑가지에서 뻗어 나온 가지에는 남성을 상징하는 남근모양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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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은 가지 끝자락 마다 용틀임 형상으로 수 십 마리의 크고 작은 용이 마치 소나무에 걸터앉아 있는 것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원가지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굵은 가지 중간에는 언제부턴가 남근모양이 생겼다. 남성을 상징하는 남근모양은 최근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형상 때문에 자식과 손자들을 얻기 위한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소원을 빌면 잘 이뤄진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언제부터인가 작은 돌들이 소나무 디딤돌에 얹혀 지게 됐다"고 한다.

 

또 가지마다 하늘로 승천을 하려는 용틀임 형상이 자연스럽게 연출돼 수 십 마리의 용이 소나무에 앉아 있는 것 같아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보통 소나무 한 그루에 용틀임 현상은 한번 정도 생기고 있으나 석송령은 가지마다 형상을 띠고 있어 보는 각도 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석송령을 보는 내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세월도 비껴간 듯 흔들림 없이 머리를 숙인 다소곳한 아낙네처럼 보이기도 하고 승천을 기다리는 용의 몸짓처럼 웅장함을 뽐내고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부산에서 며느리와 함께 여행을 온 문승광(63)씨는 "전국 어디를 돌아다녀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는 처음 본다"며 "세금 내는 나무, 남근 모양을 지닌 수백 년 된 소나무 소식을 듣고 손자를 얻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와보니 정말 잘 온 것 같다"고 전했다.

 

 

농산물품질관리원 예천사무소장이며, 농화학 기술사·종자기술사인 박승민 소장은 "식물학적으로 훌륭한 DNA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소나무로소 영구 보존의 가치가 높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보통 나무는 원줄기가 높게 뻗어 나가는 반면 석송령은 원줄기보다 옆 줄기가 더 길게 뻗어 져 나가 원 줄기보다 1.5배가 더 늘어져 특이하게 자란 세계에서 하나뿐인 소나무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문적으로 말하면 보통 나무는 정부우세성(頂部優勢性)에 반하는 형태로 성장하고 있으나 석송령은 그 반대로 옆 가지가 더 크게 성장하고 있다"며 특이함과 우수성을 강조했다.

 

정부우세성이란 가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눈에서 발생한 가지가 세력이 제일 강하게 자라고, 아래 눈으로 내려올수록 가지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거나 숨은 눈으로 되는 현상을 말한다. 석송령은 그 반대로 자라고 있기 때문에 식물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예천군 농업기술센터 성백경 계장(52)은 "95년도부터 종묘를 채취 해 후계목을 양성하려고 했으나 실패로 난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으나 새로운 연구와 시도로 마침내 후계목을 생산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문헌에 따르면 석송골에서 자란 소나무들이 특이하게 밑가지가 뻗어 나가는 형상을 띠고 있어 토양과 지역의 기후에 따른 특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여진다"며 "그 중에서도 1만분의 1정도가 석송령처럼 큰 형태를 띠고 자랄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석송령의 종자인 솔방울의 크기 또한 어린이의 주먹만 하고 솔씨도 일반 적송, 금강송보다 크고 굵다.

 

한편, 예천군은 지난해부터 국립산림과학원 및 문화재청과 함께 천연기념물 석송령의 우량 유전자(Gene)를 추출해 복제 나무를 만들어 유전자를 보존하고 있다.

이상만기자 smlee@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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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천향리 석송령 - 포토 | 식물도감(植物圖鑑

 

 

 

 

 

6.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천연기념물 409호

공식명칭: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한자명칭: 蔚珍 杏谷里 처진소나무

주소: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672번지

종목: 천연기념물 409

지정일: 1999.04.06

 

 

요약설명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는 키 11m, 둘레 3.01m이고, 나이는 약 350년으로 추정한다.

천천동 마을 입구 개울가에서 혼자 자라며, 마을이 생겨날 때 심은 마을의 상징나무이다.

 

당시 이 소나무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1960년 이후 주변의 소나무는 모두 벌채되고 모양이 아름다운 이 나무만 보전되었다고 한다.

 

“우산을 쓰고 있는 나무”

행곡리 처진소나무는 커다란 우산을 펼쳐 놓은 듯한 모습으로, 가지가 아래로 늘어진 처진소나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가지 끝 새순은 항상 낚싯바늘처럼 위를 향해 서지만 이듬해 새순이 날 때에는 지난해의 것은 아래로 처진다고 한다.

 

 

상세설명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다. 이 처진 소나무는 나이가 약 3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11m, 둘레는 3.01m이다.

이 나무는 마을이 생겨날 때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마을의 상징으로 보호를 받고 있으며, 특히 나무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울진 행곡리 처진 소나무는 희귀종으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민족의 기상과 온유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울진 행곡리의처진소나무

나무 둘레가 2미터 넘으면서 10미터까지는 궁궐의 기둥처럼 곧고 웅장하게 하늘을 치솟다가 나머지 4미터는 가지가 사방으로 휘돌아 갈라지면서 땅에까지 내려앉았다. 오를 때의 기상은 팔씨름하는 남자의 팔근육을 닮았고, 내려올 때의 자태는 한복을 고이 입은 조선 여인의 치맛자락을 닮았다.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많지만 이처럼 민족의 기상과 온유함을 동시에 가진 소나무도 드물 것이다.

 

모양새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 자락의 정이품송과 흡사하며, 효자각을 안고 있는 온화한 모습은 지나가는 뭇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소나무는 나이가 약 300년이며, 왕피천의 한줄기인 광천변 행곡2리(천전동)에 위치한다.

1960년대 이전에는 이 지역이 소나무 군락지였으나, 1960년대 농경지 확장과 수해 등으로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이 소나무만 홀로 남았다.

 

마을 초입에 위치하기에 마을사람들이 신성시하거나 관련 전설도 있을법한데 80노인을 찾아 물어보아도 숭배의 대상이거나 관련 전설은 들은바가 없다고 말한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와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당시 이 동네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더 어려운 살림살이어서 마을의 사람들에게는 배고픔을 위로해주는 쉼터와 놀이터의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어른들은 동네 모임이나 큰 일이 있으면 나무 밑에 모여 마을일을 의논하였고, 일과 배고픔에 지치면 큰 가지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기에 쉼터였으며, 아이들은 술레잡기, 씨름 등을 하는 놀이터였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태어나 300년을 넘긴 1999년 4월에 그 수형이 아름답고 특이함을 인정받아 천년기념물 409호로 지정되었다.  

이 소나무는 행곡2리(천전동)에서 광천을 사이에 두고 천량산 천량암과 마주보고 있다.

천량암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한 곳이다.

바위구멍에서 아침 저녁으로 쌀이 조금씩 나왔다하여 이 마을은 미고(米庫:쌀고)라고 하였으며, 그 뒤 쌀구, 살구로 부르다가 행곡(杏谷)으로 고쳐 불렀다.  

 

 

 

이 소나무는 가슴에  효자각을 안고 있는데 사연은 조선 순조 때 주명기라는 사람에서 연유한다.

 

주명기는 유년에 모친을 잃고 부친을 효도로 받들었으며, 부친이 전신불구가 되자 지극히 봉양하였다고 전한다.

 

매일 붕어를 잡아 봉양하였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봉양하였으며, 시묘에 정성을 다하여 순조 8년인 1808년 이 소나무 앞에 효자각을 세웠다고 전한다.

 

이 소나무는 지난해 MBC-TV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의 촬영지가 되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바로 곁에 있는 대나무 숲길과 잘 어울리며, 동네를 한바뀌 돌면 우리나라 농촌 사회의 정겨움과 아름다움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다.

 

찾아오는 길은 7번국도와 36번 국도가 만나고 왕피천과 동해바다가 만나는 울진군 근남면 수산교에서 영주방향의 36번 국도를 따라가면 첫 마을이 행곡1리, 강 맞은 편 마을이 행곡4리, 행곡4리 윗마을이 이 소나무가 있는 행곡2리 천전동이다.

 

 

주명기는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전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항상 옆에서 보살폈다.

노병(老病)에는 붕어죽이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는 매일 붕어죽을 해 주었는데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그물을 놓아 붕어를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또 아버지의 병이 위급할 때에는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죽에 타서 마시게 하여 소생시켰다.

아버지 상을 당한 후에는 여막을 치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수령이 300년 정도이면서도 자태가 아름다워 천연기념물에 선정된 울진 행곡리의 처진 소나무는 가슴높이의 나무 둘레가 2m이며 높이 10m 정도까지는 가지가 없이 커 올라가다가 뻗어나온 가지들이 아래쪽으로 뻗어내린 자태를 뽐내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09호로 지정되었으며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자리하고 있다.

출처: 무등산닷컴 /http://cafe.daum.net/mudeungsancom

 

 

 

천연기념물인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영생의 길 열려 천연기념물 제409호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복제 유전자 보존작업 착수

 

천연기념물 제409호인 경북 울진의 처진소나무의 DNA 추출 및 복제나무가 만들어져 유전자가 보존된다.

경북 울진군과 국립산림과학원,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인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처진소나무의 우량 유전자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 기후변화 등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DNA 추출 및 복제나무를 만들어 유전자를 보존할 계획이라고 20일 밝혔다.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는 나이가 약 3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마을이 생겨날 때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무의 모습이 아름답고 마을의 상징목으로 생물학적·민속적 보존가치가 커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같이 문화적·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천연기념물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와 똑같은 나무를 복제하고 DNA를 추출 장기보관하는 방법으로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의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할 계획이다.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이용되는 방법은 무성증식법인 접목을 이용한 유전자 복제기법으로 똑같은 복제나무를 만들어 보존하게 된다.

 

울진군과 국립산림과학원,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와 같이 우리의 얼과 정서가 깃든 소중한 자원이 유지·보존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보존관리 체계 구축과 보존원 조성 및 DNA지문 작성에 의한 식물법의학 증거자료 확보 등 적극적인 유전자 보존을 위하여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울진=장영태 기자 3678jyt@segye.com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 포토 | 식물도감(植物圖鑑)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 포토 | 식물도감(植物圖鑑)

처진소나무(柳松) | 식물도감(植物圖鑑)

 

 

 

 

 

 

7.의령 성황리 소나무

 

천연기념물 359호

명 칭: 의령 성황리 소나무 (宜寧 城隍里 소나무)

종 목: 천연기념물  제359호

수량/면적: 1,140㎡(보호구역)

지정(등록)일: 1988.04.30

소 재 지: 경남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산34-1번지

관리자(관리단체): 의령군

 

요약설명

의령 성황리 소나무는 키 13.5m, 가슴높이 둘레 4.8m이고, 나이는 300년으로 추정하며, 마을 뒷산 기슭에서 홀로 자란다.

 

 

의령 성황리 소나무는 마을 뒷산의 경사면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13.5m, 둘레 4.8m의 크기로 1∼2.7m 높이에서 가지가 4개로 갈라져 옆으로 넓게 퍼졌으나, 그 가운데 하나는 죽어버렸다.

 

의령 성황리 소나무에 대한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북쪽에는 묘소가 있고, 마을 앞 산기슭에는 의령 남씨의 사당이 있어 이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소나무와 30m 정도 떨어져 있는 다른 소나무의 가지가 맞닿으면 통일이 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의령 성황리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오래된 서낭나무로서 민속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나라의 앞일을 예언하는 소나무”

성황리 소나무는 세 개의 굵은 가지가 거의 수평을 이루며 뻗어 있어 약간 펑퍼짐한 모습이다.

 

성황리 소나무 북서쪽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더 있는데, 한일합방이 되었을 때부터 의령 남씨의 후손들에게는 두 소나무의 가지가 맞닿으면 해방이 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나무가 서로 맞닿을 즈음 실제로 일제가 망하고 광복이 되었다고 한다. 성황리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나무로, 지금은 두 소나무의 가지가 맞닿으면 통일이 된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상세설명

의령 성황리 소나무는 마을 뒷산의 경사면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13.5m, 둘레 4.8m의 크기로 1∼2.7m 높이에서 가지가 4개로 갈라져 옆으로 넓게 퍼졌으나, 그 가운데 하나는 죽어버렸다. 의령 성황리 소나무에 대한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북쪽에는 묘소가 있고, 마을 앞 산기슭에는 의령 남씨의 사당이 있어 이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소나무와 30m 정도 떨어져 있는 다른 소나무의 가지가 맞닿으면 통일이 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의령 성황리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오래된 서낭나무로서 민속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의령 성황리 소나무 명품혈통 잇는다

천연기념물 소나무, 꽃가루를 이용한 유전자 보존 작업

김종성 기자 /기사입력 2014/05/28 [13:47]

의령군과 국립산림과학원은 천연기념물인 정곡면 성황리 소나무의 꽃가루를 채취해 저장하는 방법으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 기후변화 등으로부터 우량 유전자(Gene)의 혈통을 이어갈 계획이다.

 

양 기관은 그간 진행해온 천연기념물 복제나무 육성과 더불어 꽃가루를 이용한 맞춤형 혈통보존으로 우리의 얼과 정서가 깃든 소중한 천연기념물 유전자원을 효과적으로 유지·보존키로 했다.

 

성황리 소나무는 수령 300년 정도의 노거수로,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으나 주변 유적들을 통해 의령 남씨 선조들과 관계가 있으리라 추정되며 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서낭나무로 신성시되고 있다.

 

1.7m 높이에서 줄기가 4갈래로 갈라져 옆으로 퍼져 웅장한 수관을 이루는 소나무로 민속적·생물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천연기념물 제359호로 지정됐다.

 

28일 군 담당자는 “성황리 소나무의 꽃가루가 날리기 전에 건강한 꽃가루를 수집해 유전자은행에 안정적으로 장기 보존하는 방법을 이용, 유서 깊은 유전자원을 장기 보존키로 했다”며“필요시 성황리 소나무의 우량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계목 육성에 활용하여 우수한 혈통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의령 성황리 소나무 - 포토 | 식물도감(植物圖鑑)

 

 

 

 

 

8. 정선 화암리 소나무

 

강원도 기념물66호

식명칭; 정선화암리소나무

주소: 강원 정선군 동면 화암리 244

종목: 시도기념물 66

지정일: 1994.04.25

한자명칭: 旌善畵岩里소나무

 

 

강원도 기념물 제66호, 높이는 11m, 가슴높이의 둘레는 3.92m, 밑동둘레는 4.12m이고 수관(樹冠)의 넓이는 동서축이 21.8m(동 12.3m, 서 9.5m), 남북축이 17.4m(남 8.2m, 북 9.2m)인 거목으로 나무의 나이는 약 1,300년으로 추정된다.

 

가지의 일부가 죽어 있으나 생육상태는 양호하다. 이 나무는 옛날 이 근처에 화표사(華表寺)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이 암자에 있던 승려가 죽자 이곳에 묻었으며 그 뒤 이 묘에서 자라난 소나무가 지금의 늙은 소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죽은 승려의 혼이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여 화표동 절골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보존되어 왔다.

문화재 소개

정선 화암리의 소나무는 나이가 1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1m, 둘레는 3.9m이다.

생육상태가 매우 좋으며, 윗쪽 가지부분은 각각 따로 가꾸어 놓은 것 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근처에 화표사라는 작은 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 살고 있던 승려가 죽어 이곳에 묻힌 후 묘에서 자란 소나무가 지금의 화암리 소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소나무에 정성스레 치성을 드리면 승려의 혼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여 화표동 절골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나무로 보호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화암소나무를 찾고 있다.

정선 화암리의 소나무는 매우 오래된 나무로 전설이 담겨 있어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아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2005.5.27 자연고사로 인한 문화재적 가치가 상실되어 지정해제됨.

 

정선군 동면 화암리 소나무가 600년의 역사를 간직해오고 있으나 본목(本木)은 고사하고 후계목이 살아남자 이를 추모하고 후계목의 장수성장을 기원하는 행사도 펼쳐져 산림보존과 가치에 대해 깨닫는 시간이 됐다.

 

정선군에 따르면 참살이와 Art의 그림바위로 유명한 동면에서는 지난 음력 7월7일 이었던 8월7일 고사한 화암리소나무에 대한 진혼 및 후계목의 장수성장을 기원하는 행사가 마련됐다.

 

8월7일은(음력 7월7일) 칠석으로 1년 동안 떨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로 알려져 있어 화암리 소나무와 후계목(子木)이 만난다는 의미에서 날짜를 정하여 행사를 개최하게 된 것.

 

동면 화암리 소나무는 수령이 약 600년으로 1994년4월25일 강원도지방기념물 제66호 지정되었으나 자연고사됨에 따라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인근의 자연번식 된 소나무 중 유전자 감식을 통하여 후계목(子木)을 지정하게 됐으며, 아울러 후계목으로 지정되는 나무는 2007년 2월5일 국립산림과학원에 화암리 소나무와 인근 후계목 20본, 대조 후계목 10본의 시료를 채취하여 감식의뢰를 실시, 4개 소나무가 자목으로 판명되었으며, 그 중 수령 및 외관을 고려하여 지정하게 됐다.

 

 

 

 

 

 

 

 

9.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천연기념물 180호

공식명칭: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주소: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68-7

종목: 천연기념물 180

지정일: 1966.08.25

한자명칭: 淸道 雲門寺 처진소나무

 

 

요약설명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키 9.4m, 가슴높이 둘레 3.37m이고, 나이는 약 400년으로 추정하며, 운문사 경내 만세루 옆에서 자란다.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어 소나무로는 보기 드문 품종이다.

나무가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한때는 반송(盤松: 키가 작고 밑동부터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소나무)으로 보기도 했다.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거의 완벽한 삼각형으로 보인다. 처진 소나무가 있는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에 창건된 비구니 사찰이다.

 

 

“선정(禪定)에 든 나무”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옛날 어느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시든 나뭇가지를 땅에다 꽂아 생명을 불어넣어 살려낸 것이라 하며, 임진왜란 때는 절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지만 이 소나무는 칡덩굴이 감겨 있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

 

운문사 스님들은 이 소나무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수백 년 동안 고승들의 불경 소리를 듣고 도를 닦아 몸을 낮추는 도량을 가졌기 때문이라며 이 나무를 ‘선정(禪定)에 든 나무’라 부른다.

 

스님들은 막걸리가 나무에 좋은 비료가 된다고 생각해서 1970년대부터 음력 삼월삼짇날을 택해 막걸리 열두 말에 물 열두 말을 타서 나무 둘레에 뿌려주는 ‘나무 막걸리 먹이기 행사’를 해오고 있다.

 

소나무와 막걸리는 서로 상생한다. 옛 사람들이 노송에 막걸리는 대접해온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땅 속에 엉키는 소나무 송진을 음지(陰脂)라 하는데, 음지가 많이 생기면 착근이나 활착에 좋지 못하다고 한다. 〈본초강목〉에 보면 음지를 녹이는 데는 약한 술이 좋다는 내용이 나온다. 소나무 잎을 재료로 보약이나 음식을 만들 때도 도수 낮은 술을 썼다고 한다.

 

 

상세설명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운문사의 앞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높이는 9.4m, 둘레는 3.37m이다. 나무의 모습이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한때 반송(盤松:키가 작고 밑동부터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소나무)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이 나무는 3m 정도의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본다.

 

운문사는 1,400년 전에 지었다고 하고 임진왜란(1592) 때 이 나무는 상당히 컸었다하니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스님들은 매년 봄·가을에 뿌리 둘레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는 등 정성을 다하여 가꾸고 있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답고,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며,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 나무는 소나무의 일종으로, 그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점이 보통 소나무와 달라서 처진 소나무라고 한다. 처진 이런 나무는 간혹 야생상태에서는 보고된 바 있고 또 소나무가 눌렸을 때에 가지가 위로 뻗지 못하여 밑으로 처져 있다가 그대로 굳어져서 외관상 처진 소나무처럼 된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소나무는 전혀 그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이다,

 

수령(樹齡)은 미상(未詳)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6m, 가슴높이의 둘레가 2.9m, 밑둥둘레가 3.45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8.4m, 서쪽이 9.2m, 남쪽이 10.3m, 북쪽이 10m이다. 소나무의 일품종(一品種)으로 가지가 축처진 수종(樹種)이다. 지상(地上) 2m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지주(支柱)로써 지탱되고 있다.

 

현재(現在) 이 나무의 수형(樹形)이 아주 좋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이 나오게한다고 한다. 이 나무의 건강을 위하여 매년 봄 가을에 걸쳐 막걸리를 한말씩 물에 동량(同量)으로 타서 뿌리 가장자리에 준다는 것이다. 운문사(雲門寺)가 1400년전에 지어졌다 하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 나무는 상당히 컸었다하니 상당히 오래된 나무라고 사료되고 고승(古僧)이 소나무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구전(口傳)이 있기도 하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 포토 | 식물도감(植物圖鑑)

처진소나무(柳松) | 식물도감(植物圖鑑)

 

 

 

 

 

 

합천 화양리 소나무

 

천연기념물 289호

공식명칭: 합천 화양리 소나무

주소: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835외 1필

종목: 천연기념물 289

지정일: 1982.11.04

한자명칭: 陜川 華陽里 소나무

 

 

요약설명

합천 화양리 소나무는 키 17.7m, 가슴높이 둘레 6.15m이고,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한다. 마을의 논 가운데 있다. 화양리 소나무는 나무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나무 모양이 용같이 생겼다고 해서, 구룡목(龜龍木)이라고 부른다.

 

 

“연안 김씨를 살린 신령스런 소나무”

 

조선 선조는 광해군을 폐하고, 14명의 아들 중 유일한 적출(嫡出)이면서 영특한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했지만 급사(急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다.

 

광해군이 즉위하고 5년째 되는 해 강화도에 유배당한 어린 영창대군이 죽임을 당하는 ‘계축옥사’가 일어난다.

 

‘계축옥사’는 연흥부원군 김제남(金悌男)이 자신의 딸인 인목대비의 아들이자 외손자인 영창대군을 임금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무고(誣告) 사건으로, 김제남은 사약을 받아 죽고 일가는 삼족을 멸하는 화를 당하게 되었다.

 

이때 용케도 살아남은 김제남의 6촌 동생이 합천으로 피신하여 화양리의 소나무 아래에 초막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다.

 

이때 살아남은 연안 김씨 후손들이 이 소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으로 여기며 지금도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나무 아래에 모여 동제를 지낸다.

 

상세설명

합천 회양리의 소나무는 해발 500m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한 화양리 나곡마을의 논 가운데 서 있으며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7.7m, 둘레 6.15m의 크기로 가지는 2.5∼3.3m 높이에서 갈라져 다시 아래로 처지 듯 발달하였는데 그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나무 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고 가지가 용처럼 생겼다 하여 구룡목(龜龍木)이라고도 한다.

연안 김씨의 후손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광해군 5년(1613)에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3족이 멸하게 되자 김제남의 6촌벌 되는 사람이 도망와서 이 나무 밑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 여기고 오랫동안 보호해 왔으며, 민속적·역사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99)합천 화양리 소나무

수령 500년 천연기념물… 산골마을 수호신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025021002

 

시인 황동규는 ‘휴대폰이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탁족’에서)고 했다. 고작 10년 전에 쓰인 작품에서 이야기한 살가운 곳은 이제 더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경남 합천 묘산면 화양리 나곡 마을은 아마도 오랫동안 시인의 표현처럼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살가운 산마을이었다. 그러나 이 한적한 산마을에도 3년 전부터 휴대전화가 연결됐다. 마을 오르는 산길이 매우 비좁고 험한 까닭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한 나곡 마을은 칠순 넘은 노인들 일곱 가구가 모여 살아가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산마을이다. 마을 노인들은 농사일에서부터 읍내 나들이까지 마음을 맞춰 가며 너나들이로 허물없는 공동체로 지낸다.

 

 

●한국전 참전 동네 젊은이들 지켜줘이 정도만으로도 화양리 나곡 마을 풍경은 충분히 평화롭고 한가로우리라 짐작할 수 있다. 저절로 평화가 지켜지는 깊은 산골이다. 이쯤 되면 마을 풍경 한쪽에서 훌륭한 나무 한 그루쯤 찾을 수 있으리라 예상하게 마련이다. 그렇다. 이 깊은 산마을에 사람들처럼 평화롭게 서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다.

 

“우리 마을을 지켜 주는 나무예요.

한국전쟁 때 전쟁터에 나가게 된 사람들은 나무 앞에 술 한 잔 바치고 절을 올리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했지요. 그 험한 전쟁에서 다친 사람 하나 없이 성하게 돌아온 것도 모두 나무 덕이지요.”

마을 앞 비탈에 일군 조그만 밭에서 곡식을 갈무리하던 백운기 노인의 이야기다. 올해 75세인 백 노인은 이 마을 최연소자다. 그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자신이 군대에 갈 때에도 나무 앞에서 무사 귀환을 빌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10년쯤 전에 산 아래에서 큰불이 난 적이 있었어요.

바람도 험하게 불던 날이어서 우리 마을이 꼼짝없이 불길에 포위당해 죽을 뻔했지요. 소방차가 여러 대 출동했는데, 저만치에서 바람이 거꾸로 돌면서 우리 마을은 안전하게 남았지요. 그게 다 마을을 지켜 주는 나무 덕이지요.”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이 마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나무 주위로 눈에 띄게 달라진 풍경이 그 하나의 예다. 서너 해 전만 해도 나무 곁으로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다랑논이 줄지어 펼쳐 있었다.

 

특히 가을걷이를 앞둔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다랑논은 모두 묵정밭이 되어 허리 높이 위로 어지러이 흐트러진 이름 모를 풀들만이 무성하다. 이태 전 논 임자이던 칠순의 배용수 노인이 농기계 사고로 수명을 달리한 뒤로 버려진 탓이다.

 

 

샘물 흐르던 나무 곁에 마을터 잡아“

산이 깊어 농사짓기도 어려워. 곡식이 익을 무렵이면 멧돼지들이 내려와서 온 밭을 휘저어 놓아서 남아나는 곡식이 없어. 그 사람 죽고 나니 저 밭에서 농사짓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거야.”

백 노인과의 이야기가 깊어질 즈음 밭일을 도우러 나온 거창댁(84)의 이야기다.

 

이 산골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400년쯤 전 조선 광해군 집권 초기의 일이다. 광해군은 왕위에 올랐지만, 선조가 비밀리에 세자로 지목하려 했던 영창대군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낳은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위하고,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연흥부원군 김제남을 사형에 처했으며, 급기야 영창대군까지 죽음에 몰아넣었다.

 

이후 김제남 일족을 멸하려 하자 김제남의 육촌 형제 중 한 사람인 김규라는 사람이 조정의 피바람을 피하고자 은신처를 찾아다니다 이 깊은 산골에 들게 됐다.

 

김규는 이 골짜기에 이르러 큰 소나무 아래에서 다리쉼을 하다가 낮잠에 들었는데,

꿈에서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며 따라오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난 김규는 나무 아래에서 샘을 찾아낸 뒤, 이곳에 터 잡고 마을을 일으켰다고 한다.그때 그 나무가 바로 지금의 화양리 소나무다.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알려준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처음엔 ‘나천(川) 마을’이라고 부르다가 샘이 없어지면서 지금은 ‘나곡 마을’로 부르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조정의 피바람을 피해 김규가 이곳에 찾아든 400년 전에 이미 큰 나무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근거로 하면 나무는 최소한 500살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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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듬직하게 솟구친 중심 줄기에서 여러 개의 굵은 가지로 나뉘며 하늘로 오른 모습은 그야말로 이 강산의 모든 소나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다 해도 전혀 무색하지 않다. 천연기념물 제289호로 지정한 이유다.

 

키 18m의 화양리 소나무는 6m쯤 되는 줄기가 3m쯤 높이에서 3개의 굵은 가지로 나눠서 진 뒤에 제가끔 다시 여러 개의 가지를 뻗으며 멋지게 자랐다. 사방으로 20m 이상 고르게 펼쳐진 가지는 단아한 우산 모양이다. 나뭇가지의 꿈틀거림은 마치 하늘로 오르는 용을 닮았으며, 줄기 껍질은 거북의 등껍질을 닮았다 해서 ‘구룡목’(龜龍木)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거북과 용 닮아 ‘구룡목’ 별명도“

지금 나무 옆으로 흐르는 개울은 나무에 물기가 모자란다고 해서 얼마 전에 물길을 돌려 낸 거지. 나무 아래에 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무는 이 산골에 사람이 들어오기 전부터 저 자리에 있던 큰 나무였다고 해.”

 

나무 바로 옆의 낮은 울타리 집에서 나무에서 배어 나오는 평화를 누리며 70년 넘게 살아온 거창댁은 사람의 시간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해 늘어놓는다.

 

세월이 더 흘러 노인들마저 떠나면 다시 들어와 살 사람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깊은 산마을이지만, 나무만큼은 그동안처럼 풍경의 중심으로 의연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노인들의 평화로운 공동체를 지켜온 화양리 소나무의 참 평화가 마을 노인들과 함께 오래가기를 바랄 뿐이다.

글  합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g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835. 88올림픽고속국도의 해인사 나들목으로 나가서 좌회전해 가야천을 따라 야로면으로 간다.

 

야로면 소재지에서 5㎞ 남짓 직진하면 계동 마을이 나온다.

 

여기에서 500m쯤 더 간 뒤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 산마을로 들어서는 삼거리가 나온다.

 

우회전해 800m쯤 들어가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2.2㎞쯤 산비탈을 오르면 나곡 마을에 이른다.

 

마을 가까이의 1.2㎞ 구간은 도로 폭이 좁고 굴곡이 심해 조심해야 한다.

 

나무는 마을 앞 다랑논 가장자리에 있다.

 

 

 

꽃가루 채취해 장기 보존, 재해로부터 소나무 지켜

산림과학원, 천연기념물 소나무 유전자 보존한다

문슬아 기자 msa1022@naver.com | 2014-05-09 17:39:50

 

국립산림과학원이 천연기념물 소나무들의 유전자를 보존한다. 사진은 합천 화양리의 소나무 화분채취 모습.

 

국립산림과학원(원장 윤영균)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들의 꽃가루를 채취해 유전자를 보존한다.

 

소나무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오래 사는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장수의 상징으로 손꼽인다. 

 

특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는 평균 400년 이상의 노거수로 전설이나 역사적 사실 등을 지녀 마을의 당산목이나 수호신으로 추앙 받고 있다.

 

또한 외형적으로도 웅장하고 화려해 문화적, 역사적, 경관적, 학술적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문화재청, 지자체와 협업(協業)을 통해 경남 거창군 당송 등 천연기념물 소나무 13본의 꽃가루(화분)를 채취해 저장하는 방법으로 우량 유전자의 혈통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전자 보존은 건강한 꽃가루를 수집해 유전자은행에 안정적으로 장기 보존하는 방법을 이용한 것으로, 이를 통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 기후변화 등으로부터 소나무의 혈통을 이어갈 수 있다.

 

장경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과 박사는 "꽃가루 저장법을 통해 유서 깊은 유전자원을 장기 보존함과 동시에, 천연기념물의 우량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계목 육성에 활용해 우수한 혈통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립산림과학원은 천연기념물 복제나무 육성과 더불어 꽃가루를 이용한 맞춤형 혈통보존으로, 천연기념물 유전자원을 효과적으로 유지·보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합천 화양리 소나무 - 포토 | 식물도감(植物圖鑑

 

송림

 

 

 

 

 

 

진도덕병송림(珍島 德柄 松林/海松防風林)

 

예전에는 바다가였던 덕병마을 앞에는 갯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솔목'이라고 부르는 이 방풍림은 어느 시기에 조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나무, 팽나무 특히 대나무가 많았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는 모래사장이 발달해 학생들의 대표적인 소풍 장소였고 놀이터였다.

 

이곳 방풍림을 지키는 일은 구장(이장)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었다. 나무가 귀하던 시절에 방풍림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홍역을 앓다 죽은 아이를 이곳에 묻어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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