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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관(主屹關)

호남인1 2012. 2. 14. 00:21

 

 

 

 

주흘관(主屹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聞慶邑) 상초리(上草里) 계곡에 있는 제1관문(關門)의 이름.

 

영남 제1관문인 주흘관은 새재 입구에 있는 성문으로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하였고, 영조 때에 조령진이 설치되어 문경현감이 수성장을 겸하였다. 한말 항일의병 전쟁때에 일본군이 불태웠던 문루를 1922년에 다시 지었다.

 

 

문경새재에 있는 3관문 가운데 하나인 주흘관은 1관문이라고도 불리우는 성문으로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이 문은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되었고, 구한말 항일의병 전쟁 때에 일본군이 불태웠던 궁문을 1922년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흘관은 문경에서 가깝고 영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는데 있어서 첫 번째 관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고,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가 11cm나 된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m, 길이 188m이고, 부속산성은 높이가 1-3m, 폭 2-4m,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쪽이 400m나 된다. 또한, 특이한 점은 개울물을 흘려 보내는 수구문이 아직도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이 주흘관은 3개의 관문 가운데 옛모습 그대로를 지니고 있고, 문경 쪽에서 접근하기도 쉬워 가장 많은 탐방객들이 모여든다.

 

▲ <제1관문 - 주홀관>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하였고, 영조 때에 조령진이 설치되어 문경현감이 수성장을 겸하였다. 한말 항일의병 전쟁때에 일본군이 불태웠던 문루를 1922년에 다시 지었다.

주흘관은 정면 3칸 측면 2칸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고,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cm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m, 길이 188m이고, 부속산성은 높이가 1-3m, 폭 2-4m,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쪽이 400m이다.

개울물을 흘려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중 가장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1965년 11월 9일 문경군 교육청에서 제 1관문 수선공사의 설계승인을 얻어 1966년 보수하였다. 1969년 문화재 보호업무가 교육청에서 시군으로 이관되고 1972년부터 문화재 감시원이 배치 됐으나, 1988년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이후 전략요충지라 하여 1973년 예비군 700여명이 성벽위에 폭과 높이 1m정도 증축하여 총구를 만들어 원형이 변경되었다.1974년 문경군에서 보수정화 공사를 시행하였다. 이때 성문, 후문 좌우계단, 좌측 성곽 320m, 협문등을 보수하였다.

 

 

주흘관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주흘관은 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며 군사적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鷄立嶺)이 중요한 곳이 었으나, 고려초부터 이곳 초참(草站)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鳥嶺)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주흘관은 험한 산세로 이루어진 조령산과 주흘산(主屹山)이 좌우로 펼쳐진 계곡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지이다.

 

 

조선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 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 탄금대로 후퇴해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대패하였다.  그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여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 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 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을 조동문(鳥東門) 혹은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을 조령관(鳥嶺關)이라 이름한다.

 

 

 

문경새재

▲ 백두대간의 조령산을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문화,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의 『새(사이)』, 새로 된 고개의 『새(新)재』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이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 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터만이 남아 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남아 있다.

 

그리고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장군, 동학과 의병이 남긴 사담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 (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어 전국에서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관람료>개인 어른 : 2,100 학생/군인 : 1,100 어린이 : 750 단체 어른 : 1,700 학생/군인 : 900 어린이 : 600

<주차료>당일 - 승용/화물 : 2000원, 승합: 4000원체류 - 승용/화물 : 4000원, 승합: 8000원

 

● 현지교통- 문경시에서 문경읍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 문경읍에서 문경새재까지 시내버스로 1일 12회 운행. 소요시간은 10분정도.

 

● 외부에서 오시는 길

- 서울 -중부고속도로→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IC→문경새재도립공원

- 부산·대구 - 경부고속도로→김천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IC→문경새재도립공원

- 광주대전 -경부고속도로→남이분기점→중부고속도로→증평IC→국도34번→괴산→연풍→이화령터널→문경새재도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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