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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Cairo)

호남인1 2011. 7. 14. 17:27

 

 

 

 

카이로 (Cairo)

이집트의 수도. 현지어로는 '알 까히라'(Al-Qāhirah)라 부른다. 나일강 델타 끝부분, 지중해를 바라본 곳에 위치해 있다.

위치 좌표 /30°03′29″N 31°13′44″E / 30.058056°N 31.228889°E / 30.058056; 31.228889좌표: 30°03′29″N 31°13′44″E / 30.058056°N 31.228889°E / 30.058056; 31.228889

 

면적 83㎢, 인구 약 1500만명. 1922년 이집트가 독립했을 때만 해도 인구가 60만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후 급격히 늘었고, 지금도 팽창이 계속되고 있다.

 

 

연평균 강수량 25㎜의 사막기후로, 연간 한두차례 적은 양의 비가 내리는 정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구가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나일강의 혜택 때문이다.

7월 평균기온 27.7℃, 1월 평균기온은 12.7℃다. 사막기후라고는 하지만 위도가 높은 편이고 건조하기 때문에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이나 이집트 남부 아스완 같은 지역에 비하면 견디지 못할 정도의 더위는 아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쾌적한 편이어서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을 정도다.

 

 

카이로는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요지에 있어 오래전부터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기능해왔다.

 

이집트는 물론, 북아프리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지금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에 밀려 중동 정치와 경제의 중심에서 조금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지만 중동의 맹주 역할을 해온 이집트의 수도로서 카이로가 가진 위상은 무시 못한다.

 

그러나 실제 도시는 전형적인 개도국의 대도시로서, 20~30년씩 된 낡은 차들이 뿜어대는 매연 때문에 숨쉬기 힘들 정도로 공기가 오염돼 있다.

수천년을 버텨온 파라오 람세스의 거석상이 환경오염 때문에 훼손될 지경이 되어 중앙역사인 람세스 2세역 앞 광장에서 2005년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정도다.

 

1960~70년대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에 아직까지도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경제도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탓에 성장하지 않아 도시 외관은 매우 낡고 허름하다.

주택난과 교통체증, 인프라 부족, 학교 부족 등 도시생활기반이 열악하고 때로는 식료품 같은 생필품 품귀현상도 일어난다.

 

 

1990년대 이래 몇 차례 테러 공격을 받은 바 있고, 2005년부터는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거센 시위가 때때로 일어나는 등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도심은 나일 델타(삼각주)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분기점 바로 상류에 있다.

가지가 뻗듯 갈라진 나일강이 여러갈래로 카이로를 흐르는데, 다운타운은 주로 나일강 오른쪽 연안과 중간의 섬인 게지라섬·로다섬, 강 왼쪽 연안을 따라 펼쳐져 있다.

시내는 전통적인 구시가지와 서구식 신시가지로 나뉜다. 노벨상 수상 작가 나깁 마흐푸즈의 소설들의 배경이 됐던 구시가지는 남쪽 '올드 카이로'에서 동족 모카탐 구릉까지 이어진 넓은 땅에 펼쳐져 있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해버린 올드 카이로는 이집트 최후의 왕조인 무하마드 알리 파샤의 알리 왕조(1805∼1952) 시절 건설됐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총독으로 이집트에 파견된 알리는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독자적으로 왕조를 세우고 이집트 재건에 힘썼으며 근대화 노력을 기울였다.

 

 

 

 

 

 

카이로 [까히라, 알까히라]

카이로(영어: Cairo, 아랍어: القاهرة, al-Qāhirah, 문화어: 까히라)는 이집트의 수도이다. 서기 642년에 건설된 도시로, 도시권의 인구는 1700만에 달한다.

 

역사

로마 제국 시대의 고대 이집트 카이로 지역은 나일강 삼각주에 속하는 습지에 지나지 않았고, 소규모 취락이 흩어져 있는 미개한 지역이었다. 취락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슬람 제국 침공 이전 시대의 유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서쪽의 기자 테라스는 기자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져 있지만, 그 기자도 고대 왕국 시대의 종언과 함께 피라미드에 대한 믿음도 퇴색되어 새로운 왕국 시대에는 폐허가 된 적도 있었다.

 

카이로 외곽 기자의 3피라미드

 

642년 아라비아 반도에서 건너와 이집트를 점령한 아무르 이븐 알 아스가 군대의 주둔지 푸스탓(Fustat)을 건설한 게 카이로의 출발점이다. 아무르 장군은 당시까지의 이집트 중심 도시인 지중해변 알렉산드리아 대신, 나일강을 따라 내륙으로 약간 들어간 현재의 카이로 남쪽에 푸스탓을 건설했다. 푸스탓 지역에는 점령자 아무르 장군이 세운 아무르 사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무르 사원은 당시 푸스탓의 중심지였다.

 

 

870년 이슬람제국의 이집트 총독이던 아흐마드 이븐 툴른은 바그다드(오늘날의 이라크) 칼리프다마스쿠스(오늘날의 시리아) 칼리프들이 서로 나뉘어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반(半) 독립적인 왕조를 세우고 푸스탓에서 북동쪽으로 접한 지역에 신도시 카타이를 세웠다. 그러나 카타이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이로부터 100년 뒤인 969년 파티마 왕조의 무이즈 칼리프가 이집트를 정복해 카타이 바로 옆에 왕성이자 신 도시 '알 카히라(승리자)'를 건설했다. '알 카히라'란 이름은 오늘날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

알 카히라는 파티마 왕조 시절에는 궁전과, 사원(알 알즈하르)이 있었고, 일반인은 거주가 허용되지 않은 왕성이었다.

파티마 왕조는 예루살렘기독교도들로부터 되찾은 이슬람의 영웅 살라후 앗딘(서방에는 '살라딘'으로 알려져 있다)에 의해 망했고, 살라딘은 1171년 이집트의 통치자가 된뒤 알 카히라를 일반 시민에 개방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된 성벽 도시인 알 카히라는 이후 여러 지구(하라)로 구획됐고, 하라에는 모스크와 시장(숙suk), 공중목욕장(하맘) 같은 생활공간들이 들어선다. 살라딘이 연 아이윱 왕조(1171년-1250년)에 이어 등장한 마믈룩 왕조시대(1171-1517년)를 거치며 카이로는 당대 세계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다.

 

Cairo University

 

1517년 오스만 제국 셀림 1세의 정복으로 이집트는 속주가 됐고, 카이로도 영광의 빛이 바래게 된다.

18세기 후반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이집트와 카이로가 유럽에 다시 알려지게 된다. 19세기 무하마드 알리 왕조 아래에서 근대 도시 카이로가 정비돼 오늘날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늘날의 카이로는 파타마 왕조가 세운 왕성이 있던 지역인 '올드 카이로'를 비롯해, 피라미드가 있는 도시 서쪽의 기자, 헬리오폴리스 등으로 확대된 대도시다. 도시 남쪽의 마아디는 영국인들이 보호통치 시절에 건설한 신도시인데, 이곳에는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현대

카이로는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요지에 있어 오래전부터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국제 도시로 기능해왔다. 이집트는 물론, 북아프리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지금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에 밀려 중동 경제의 중심에서 조금 밀려났으나 중동의 맹주 역할을 해온 이집트의 수도로서 카이로가 가진 위상은 무시 못한다.

 

도시는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로서, 20~30년씩 된 낡은 차들이 뿜어대는 매연 때문에 숨쉬기 힘들 정도로 공기가 오염돼 있다. 수천년을 버텨온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거석상이 환경오염 때문에 훼손될 지경이 되어 도심의 람세스 역사 앞 광장에서 2005년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정도다. 1960~70년대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에 아직까지도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경제도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등 성장이 지지부진해 도시 외관은 매우 낡고 허름하다. 주택난과 교통체증, 인프라 부족, 학교 부족 등 도시 생활 기반이 열악하고 때로는 식료품 같은 생필품 품귀 현상도 일어난다. 1990년대 이래 몇 차례 무슬림 급진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받은 바 있고, 2005년부터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따금씩 일어나기도 한다.

 

Cairo Tower

 

도시는 나일 델타(삼각주)의 바로 아랫부분, 델타와 사막 지역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나일강을 따라 도시가 발달했으며, 도심은 나일강 양안과, 중간의 섬인 게지라, 로다 섬에 펼쳐져 있다. 강 오른쪽에서 도시가 출발했으며, 시내는 구 시가지와 유럽식 신시가지로 나뉜다. 구 시가지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나깁 마흐푸즈(영어 Naguib Mahfouz)의 소설 '카이로 3부작' 등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구 시가지는 카이로의 대표적인 모스크인 알 아즈하르 모스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다. 카이로는 '1000개의 미나렛(첨탑)을 가진 도시'라고 불리는데, 알 아즈하르 모스크 인근에는 중-근세에 수없이 많은 모스크들이 들어섰다.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이 세운 카이로 성(영어로는 citadel, 아랍어 발음은 Qalaa)의 성곽과 그 안에 자리잡은 거대한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는 지금도 카이로를 찾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이슬람 시대 카이로의 최대 건축물이다.

 

 

구 시가지는 본격적으로 시아파파티마 왕조 시절부터 조성되었고, 맘룩 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성장했다. 중세 이집트는 동서양을 잇는 중계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고, 수도 카이로는 '세계의 어머니 도시'라고 여행객에 의해 불릴 정도로 크기와 부를 자랑했다. 이집트는 물론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슬람 연구의 본산 알 아즈하르 대학이 알 아즈하르 모스크와 붙어 있다.

 

유럽식 신시가지는 이집트 최후의 왕조인 무함마드 알리가 연 왕조(1805∼1952) 때 건설됐다.

무함마드 알리의 손자인 이스마일 헤디위(영어 khedive: 오스만 제국이 속국인 이집트 통치자에 하사한 칭호)가 집권 1863년-1879년면화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들여 건설했다.

구 시가지와 나일강 사이에 자리잡은 유럽식 신시가지는 범람 때는 나일강물이 드나들던 소택지였다. 신 시가지의 중심이 오늘날 '타흐리르 광장'인데, 이 광장은 가말 낫세르의 1952년 군사쿠데타 이후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는 광장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딴 '이스마일리아 광장'이었다.

 

타흐리르 광장 외에 도심은 람세스 거리. 무감마 등 정부 청사와 카이로 시청, 중앙우체국, 호텔 등이 들어서 있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람세스 2세미이라 등 이집트가 자랑하는 고대 유물이 간직돼 있는 고고학박물관과, 아메리칸 대학이 타흐리르 광장에 있다. 가든 시티와 자말렉, 도끼 등 신 시가지와, 공항으로 이어지는 헬리오폴리스 지역에는 고급 주택이 들어서 있다. 반면 람세스2세 기차역 북쪽 슈브라에는 공장이 많고 노동자 거주지가 형성돼 있다.

 

카이로의 빈민가

 

 

이집트 박물관 (Main entrance of the Egyptian Museum)

 

이집트 박물관 - The Egyptian Museum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 박물관

주소: Midan El Tahrir Cairo 11557

입장료: 성인 60LE, 학생 30LE

운영시간: 평일 09:00~16:30

연락처: (202) 5782448

 

 

타흐리르 광장의 북쪽, 카이로 최대의 버스 터미널이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처에 나일 힐턴 호텔이 있다.

 

정면 연못에는 이집트의 상징인 파피루스와 하이집트를 대표하는 연꽃이 심어져 있어서, 이집트 전부를 상징한다. 이집트 박물관은 처음에 불락지방에 세워졌는데 현재 전시되어 있는 고미술품들이 발견된 이즈마일리아의 궁전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현재 이집트 박물관은 카이로의 타리르 광장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은 케디브 아바스 헬미 2세의 지배하에 1897년에 착공되어서 1902년 11월 15일에 개관되었다.

 

107개의 전시실이 있고 1층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고 상층에는 소규모의 조각상과 보석류, 투탕카멘 왕의 유품, 미이라가 전시되어 있다. 소장품의 수는 10만점이 박물관에는 또한 사진실과 넓은 도서관이 있고 전시실은 각각 연대기순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 중 왕족 미이라 전시실에서는 열 한명의 왕과 왕비의 미이라들을 볼 수있다. 해마다 1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 박물관을 찾고 이 중 이집트인들이 약 50만명에 이른다.

 

이집트 박물관의 전시물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람세스 2세미이라

 

 

 

 

 

 

 

카이로 국제공항은 카이로의 북동쪽 외곽 사막에 있다. 카이로의 남서쪽 끝 기자에는 고대 7대 불가사의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쿠푸, 멘카우레, 카프레 등 3대에 걸친 파라오의 무덤이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보다 시기가 앞선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영어명 Step Pyramid)나 후니 파라오의 굴절식 피라미드(영어명 Bent Pyramid)를 보려면 카이로 남쪽의 사카라(고대의 멤피스)로 가면 된다.

 

카이로 외곽 기자의 3代  피라미드

 

 

기자의 스핑크스와 피람미드

 

 

지리

이집트의 수도. 현지어로는 '알 까히라'(Al-Qāhirah)다. 아프리카 대륙 깊숙한 곳에서 발원한 나일강이 북쪽으로 흘러 흘러, 지중해 변의 나일 삼각주와 만나는 지점 직전에 위치해 있다. 도시 한복판을 나일강이 관통한다. 면적 83㎢, 인구 약 1700만 명. 1922년 이집트가 영국의 보호령으로부터 독립했을 때만 해도 인구가 60만 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후 급격히 늘었고, 지금도 팽창이 계속되고 있다.

 

연평균 강수량 25㎜의 사막 기후로, 연간 한두차례 적은 양의 비가 내리는 정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구가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나일강의 혜택 때문이다. 7월 평균기온 27.7℃, 1월 평균기온은 12.7℃다. 사막 기후라고는 하지만 위도가 높은 편이고 건조하기 때문에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이나 이집트 남부 아스완 같은 지역에 비하면 견디지 못할 정도의 더위는 아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쾌적한 편이어서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을 정도다.

 

나일강 델타지역

 

 

카이로

 

 

 

주요 건축물

 

고대 파라오 시대 건축물

기자의 대 피라미드스핑크스가 대표적인 파라오 시대 건축물이다.

 

카이로 사내전경

 

중-근세 이슬람 시대 건축물

카이로의 옛 도심 알 아즈하르 모스크인근 지역에는 이슬람 시대 사원과 성곽, 영묘, 학교인 마드라사가 수없이 많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살라딘이 세운 카이로 성(영어명 Citadel,아랍어 발음은 Qalaa)인근으로부터 북으로는 파티마 성곽의 북쪽 지역에까지 이르는 지역이다. 남북으로 4킬로미터가 넘는다. 대표적인 사원으로 알 아즈하르 모스크, 핫산 술탄 모스크(영어명 Sultan Hassan Mosque), 이븐 툴룬 모스크, 알 하킴 모스크, 리파아이 모스크가 있다.

 

후세인 모스크에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세인 이븐 알리의 목이 안치되어 있다고 하며, 이로 인해 시아파들은 이 사원을 중하게 여긴다. 카이로 성에 서있는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는 지대가 높은 성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어디서나 눈에 띈다.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었던 시대에 세운 만큼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졌다.

 

옛 도심에는 직사각형의 도시를 에워쌓던 성곽과 성문이 일부분 남아 있다. 특히 북쪽의 성곽과 성문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나스르 문'(현지 발음: 밥 알 나스르)과 '푸트흐 문'(밥 알 푸트흐) 두 개의 성문과, 10미터가 넘는 높이에 길이 수 백 미터에 이르는 성곽이 있다. 성의 남쪽에는 성곽은 남아 있지 않고, 성문인 '즈웨일라 문'(밥 알 즈웨일라)이 서 있다.

 

남문인 자와일라 문과 북문인 푸트흐 문을 잇는 성내 도로가 성의 간선 도로였다. 두 문의 중간 정도 거리에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서있다. 남문인 자와일라 문을 나와 남쪽으로 내려가면 카이로 성이 나오는데, 남문과 카이로 성 사이에도 수많은 이슬람 건축물이 있으며 이중 대표적인 게 힛산 술탄 모스크, 리파아이 모스크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카이로 (이집트 수도)  [Cairo]

나일 강 하류가 로제타와 다미에타의 두 지류로 갈라지는 지점의 바로 남쪽에 위치하며, 시가지의 대부분은 강의 우안에 조성되어 있다. 같은 자리에 같은 이름으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이 대도시는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느끼게 한다.

 

카이로 시는 카이로 주의 거의 전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시의 전체적인 모양은 남쪽으로는 나일 계곡이 사막의 단층애들 사이로 쐐기처럼 박혀 있어 좁고, 북쪽으로는 계곡이 나일 삼각주로 이어지면서 아주 넓어지는 부채꼴이다. 수세기에 걸쳐 이 도시는 나일 강의 한 수로가 유로를 바꿈으로써 홍수의 범람으로부터 벗어난 땅으로 확대되었다. 카이로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연장되었으며 강의 서쪽 기슭으로도 확대되었는데, 다만 지형과 관개에 드는 비용 관계로 서쪽 사막으로의 확장은 크게 제약을 받았다. 기후는 사막기후로 낮에는 고온건조하지만 밤에는 나일 강의 강바람으로 서늘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짧은 겨울 동안에만 적은 양의 비가 내린다.

 

 

카이로의 경제는 처음부터 행정·상업·무역·공업이 기반을 이루었다. 오늘날의 대규모 공업으로는 직물(주로 면직물)·철강·소비재 생산과 식품·담배 가공이 있다. 그밖에 상당한 부분의 전통공예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의 주요 은행, 금융회사, 운송회사의 대부분이 카이로에 본사를 두고 있다.

 

파피루스 연구소 - Dr Ragab's Papyrus Institute 

 

파피루스 연구소 - Dr Ragab's Papyrus Institute

 

파피루스 연구소 - Dr Ragab's Papyrus Institute

주소: Dr Ragab's Papyrus Institute

입장료: 외국인들에게 조금 더 비싸게 적용

운영시간: 평일 09:00~21:00

연락처: 748 8177 / 748 9035

 

 

전 영사관을 지낸 하산 라가브 박사가 세운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기자에 있는 세라톤 호텔 근처에 집 같이 생긴 배위에 있다.

여기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종이 제작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

 

1층에는 파피루스 위에 그려진 파라오의 그림들을 판매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일반 전시회를 위해 회랑도 마련해 두었다.

 

세부정보

• 운영시간 09:00~21:00

• 휴무일 연중무휴

• 입장료 외국인들에게 조금 더 비싸게 적용

 

 

클레오파트라(Cleopatra)/영화배경음악

 

 

카이로 대학교 (جامعة القاهرة,

이전의 이집트 대학교 그리고 후의 Fuad University)는 이집트 기자에 위치한 고등 교육기관이다. 카이로 대학교는 법률와 약학 학교를 포함한다. 약학학교는 카이로 약대( Kasr Alaini,قصر العيني , Qasr-el-'Ayni)로 불리면 아프리카와 중동 최초의 것이었다. 그 첫 건물은 알라이니 파샤에 의해 기부되었다. 그것은 계속 팽창하였다.

대학교는 1908년 12월 21일 설립되었다. 그것은 교육적인 사고를 위한 국가 중심을 설립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약간의 구성대학교는 대학교의 설립에 선행되었다. 공학 대학은 1816년에 설립되었는데 그것은 1854년 무하마드 사이드 파샤에 의해 폐쇄되었다. 카이로 대학교는 유럽식 시민대학교로서 설립되었다. 그것은 종교적인 대학교 알아자르대학교와는 대비되었으며 영역의 다른 주립대학교의 모델이 되었다.

 

카이로대학 도서관

 

카이로의 가장 오래된 3개 지구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슬럼가가 되었으며, 이 슬럼가들은 서구화된 중핵지대를 에워싸고 있다. 이 3개 지구 가운데 가장 큰 지구는 파티마 시로, 이곳에는 바이바르스 1세 사원과 살라딘의 성채를 비롯한 역사적인 건물이 많다. 현대화된 도심지(알아즈바키야)와 도심지 근처의 우아한 상업·주택 지구들은 빈민지역들과 매우 심한 대조를 보인다.

 

가장 큰 길인 알쿠르니시 중앙로는 강과 평행으로 뻗어 있으며, 길 양쪽으로 현대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나일 강에 있는 섬들인 앗자말리크와 알루다는 주로 주택과 휴양을 위한 구역이다.

중하류층의 사람들이 주로 사는 구역의 남쪽에는 '사자(死者)의 도시'로 알려진 지대가 있다. 초기 종교지도자들의 절묘한 성골(聖骨) 사원과 영묘들이 있어 사자의 도시로 불리는 이곳에 카이로의 가장 가난한 주민들이 밀집해서 모여 사는 것으로 보아 심각한 주택난을 알 수 있다.

 

카이로 국제 경기장

카이로 국제 경기장

  

   카이로 국제 경기장

카이로 국제 경기장(아랍어: ستاد القاهرة الدولي)은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한 다목적 경기장으로, 아랍 국가에 있는 경기장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다. 카이로 국제 경기장은 알알리와 자말렉 SC,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74,1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카이로 국제 경기장은 1958년에 공사를 시작했으며 1960년 7월 23일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의 취임과 1952년 이집트 혁명 발발 8주년에 맞춰 개장했다.

1991년 올아프리카 게임 주경기장

200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 2009년 FIFA U-20 월드컵

 

 

건축은 고대 이집트, 로마, 중세의 아라비아와 터키, 그리고 보다 현대적인 건물들이 어우러져 풍부하고 다양하다. 멤피스 근처 기자의 피라미드들은 이 대도시의 남서쪽 가장자리에 있다. 카이로에는 등록된 사적이 400개가 넘어 아프리카나 중동의 도시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모두가 130년부터 19세기초 사이에 건립된 것들이다.

 

카이로는 이집트의 고등교육 중심지로서 아랍 중동의 전역에서 학생들이 몰려든다. 교육기관으로는 카이로대학교를 비롯하여 아인샴스대학교, 알아자르대학교, 카이로에 있는 아메리카대학교 등이 있다.

 

Main entrance of the Egyptian Museum

 

카이로의 많은 문화시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이집트 (국립)박물관, 이슬람 미술박물관, 국립도서관이며, 그밖에 많은 사원과 바자(bazaar 市場)가 있다. 옛날에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마차와 당나귀들은 자동차·버스·교외열차 등으로 거의 대체되었으며, 아프리카 최초의 지하철 시스템인 카이로 지하철이 1987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카이로 지하철

 

운행중인 노선

1호선

에어컨 시설이 있으며 길이는 28.5 킬로미터이다. 헤루안에서 무비라크까지를 잇는 지하철이다. 1989년 4월에 개통된 북쪽 라인(무바라크역에서 엘마르크역까지)의 거리는 14.5 킬로미터이다. 역 간 평균 거리는 1.5 킬로미터이다.

2호선

길이 19 킬로미터의 2호선은 1990년에 개통되었다. 카이로 북부에서 나일강 건너에 있는 기자역까지 잇는 노선이었으며, 2000년 10월에 2개 역을 추가로 개통하였다.

 

 

계획 노선

3호선

엠바바에서 도시 중심부의 동쪽에 있는 살렘까지 연결하기로 예정되었으나 카이로 국제공항까지 건설하기로 조정되었다.

4호선

서남쪽 알 아흐람에서 동쪽의 나스르시까지 연결하기로 예정되었으며 길이는 24 킬로미터이다.

5호선

20 킬로미터의 길이로 1호선부터 6호선까지 반원을 이룰 것이다.

6호선

남북으로 19 킬로미터를 이을 것이다.

 

카이로는 다른 주요도시들과 철도로 연결되며, 헬리오폴리스 너머에는 카이로 국제공항이 있다. 면적 214㎢, 인구 : 시 6,789,479(1996), 수도권 10,345,000(2000). 출처: 브리태니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