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O‘zbekiston)의 이슬람건축물
우즈베키스탄 공화국(O‘zbekiston Respublikasi/Ўзбекистон Республикаси 오즈베키스톤 레스푸블리카스 또는 O‘zbekiston Jumhuriyati 오즈베키스톤 줌후리야티, 문화어: 우즈베끼스딴)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공화국이다. 수도는 타슈켄트이고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이며 우즈베크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우즈베크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구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도 소수 사용한다.
현재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일원이다(1991년 12월 CIS에 가입). 1924년 구 소련에 병합되었다. 1991년 12월 8일 독립을 선언하고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현재의 국명으로 개칭하였다.
주요자원은 석탄·천연가스·금·동·텅스텐 등으로 부존자원은 풍부한 편이다. 면화재배가 성하며, 이 밖에 쌀·양·누에고치의 생산액도 많다. 천연가스와 석유·갈탄·구리·유황의 산출 및 전력이 있고, 기계제조(농기·방직기·광업기·화학·식료품 공업용 장치류), 질소·과린산비료, 직물(견·면), 식료품공업이 발달해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리히텐슈타인과 같이 이중 내륙국을 구성하는 나라중 하나이다.
역사
우즈베키스탄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즈베크 족은 15세기까지 킵차크 한국의 지배를 받던 유목민이었으나 킵차크 한국이 붕괴되면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16세기 초, 무함마드 샤이바니 때에 크게 팽창하여 카자흐 족과 모굴리스탄 한국을 격파하고 티무르 왕조를 멸망시켜 트란속시아나(現 우즈베키스탄 일대)를 장악했으며 호라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1510년, 샤이바니 칸이 사파비 왕조와의 마르브 전투에서 패하여 영토 확장이 중단된 이후 우즈베크 족은 기존에 점령한 중앙아시아 일대에 정착하여 부하라 한국, 히바 한국을 세웠으며 약 200년 뒤인 1709년엔 코칸트 지역에 코칸트 한국도 건국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남하 정책에 의해 침략을 받아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고 소련이 탄생한 직후인 1920년에 완전히 합병되었다. 소련 지배 기간 동안 유목민과 무슬림들은 스탈린의 집단 농장 체제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은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 12월 8일에 독립하여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였다.
지리
동쪽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은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은 투르크메니스탄, 북쪽과 북서쪽은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한다. 북서 일부는 아랄 해에 면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부에 위치한 나라이다. 이곳도 사막성 기후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곳이다. 아랄 해가 위치해 있지만, 구 소련 시절엔 강을 개간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는 호수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 구역
우즈베키스탄은 12개의 주(viloyat)와 1개의 자치 공화국(respublika), 1개의 특별시(shahar)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 구역 |
주도 |
면적 (㎢) |
인구(2008년 기준)[2] |
번호 |
안디잔 주 (Andijon viloyati) |
안디잔 (Andijon) |
4,200㎢ |
2,477,900명 |
2 |
부하라 주 (Buxoro viloyati) |
부하라 (Buxoro) |
39,400㎢ |
1,576,800명 |
3 |
페르가나 주 (Farg'ona viloyati) |
페르가나 (Farg'ona) |
6,800㎢ |
2,997,400명 |
4 |
지자흐 주 (Jizzax viloyati) |
지자흐 (Jizzax) |
20,500㎢ |
1,090,900명 |
5 |
호레즘 주 (Xorazm viloyati) |
우르겐치 (Urganch) |
6,300㎢ |
1,517,600명 |
13 |
나망간 주 (Namangan viloyati) |
나망간 (Namangan) |
7,900㎢ |
2,196,200명 |
6 |
나보이 주 (Navoiy viloyati) |
나보이 (Navoiy) |
110,800㎢ |
834,100명 |
7 |
카슈카다리야 주 (Qashqadaryo viloyati) |
카르시 (Qarshi) |
28,400㎢ |
2,537,600명 |
8 |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 (Qoraqalpog'iston Avtonom Respublikasi) |
누쿠스 (Nukus) |
160,000㎢ |
1,612,300명 |
14 |
사마르칸트 주 (Samarqand viloyati) |
사마르칸트 (Samarqand) |
16,400㎢ |
3,032,000명 |
9 |
시르다리야 주 (Sirdaryo viloyati) |
굴리스탄 (Gulistion) |
5,100㎢ |
698,100명 |
10 |
수르한다리야 주 (Surxondaryo viloyati) |
테르메즈 (Termez) |
20,800㎢ |
2,012,600명 |
11 |
타슈켄트 주 (Toshkent viloyati) |
타슈켄트 (Toshkent) |
15,300㎢ |
2,537,500명 |
12 |
타슈켄트 (Toshkent shahri) |
타슈켄트 (Toshkent) |
335㎢ |
2,192,700명 |
1 |
기후
우즈베키스탄은 사막형 대륙성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연중 매우 건조하며 대체로 길게 지속되는 여름은 건기로서 열대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뜨겁고 건조하며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여름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 미처 땅에 도달하기도 전에 말라버리는 마른비가 내린다. 반면 겨울에는 우기로 비와 눈이 자주 내리면서 비교적 습도가 높고 강수량이 많은 편이지만 바람이 없어 한국과 같은 매서운 추위는 드물고 그냥 차가운 날씨라고 보면 된다. 수도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 기후의 특성을 잘 나타내준다.
정치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비에트에서 독립하면서 독립당시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있던 이슬람 카리모프가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이 되었다. 헌법이 제정된 이후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하도록 개정하였으며, 이후 종신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였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1995년 12월에 신설되었다.
휴먼라이트워치와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체제인사에 대한 심문과 고문을 비판하고 있으며, 카리모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독재자로 비난받고 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또한 2006년 5월 13일 안디잔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 발포명령을 내리는 등 무력으로 강경진압하여 500~1500명(추정)을 학살하여 국제사회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사회
주민
우즈벡족은 원래 타지크 민족과 15세기에 그들을 정복한 몽골 민족의 혼혈이라고 한다.
몽골제국의 세력이 위축되던 시기인 1312년에서 1340년까지 시르다리야 강의 북부 유목지역을 통치한 사람의 이름이 ‘우즈벡 칸’ 이었다. 우즈벡 칸이 이슬람을 강력히 전파하면서 우즈벡이라는 말이 무슬림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이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우즈벡이라는 이름의 왕조와 국가의 명칭 그리고 민족명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14세기까지 이 지역 사람들을 ‘큽착인’이라 불렀으며 ‘우즈벡’이 민족명으로 사용된 것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무렵으로 추정된다. 14세기 중엽 이후 차가타이 칸국이, 14세기 말에는 큽착왕국이 쇠잔해짐으로써 중앙아시아의 힘에 공백상태가 나타났다. 15세기 중반에 이르자 투르크계 장군 압알하일 칸이 큽착초원에 강력한 국가를 건설함에 따라 그의 일족들과 그를 따르던 자들을 ‘우즈벡’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2760만 6007명(2009년 추정치)이며, 13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벡 민족의 이슬람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러시아 인들과 다른 소수 민족들의 입지에 대한 불안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고, 옛 소련의 다른 나라에서 우즈벡족이 돌아오고 있어서, 소수 민족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89년 통계에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35%였으나, 2005년에는 3.7%로 대폭 감소하였다.
그리고, 민족 구성에서 특이한 점 한 가지는 고려인이다.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한 고려인이 인구의 1%에 해당하는 1990년대까지 22만명이 거주하였으나, 상당수가 러시아로 이주하여 현재는 약 15만 명 정도만 살고 있다. 2005년에 전체 인구 중 우즈벡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80%로 가장 많으며 그 밖의 타지크인(5%), 러시아인(3.7%), 카자흐족(3.6%), 타타르족(0.61%), 고려인(0.6%)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동부지역, 특히 페르가나 분지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별로 보면 사마르칸트 주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페르가나 주와 타슈켄트 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인구밀도 면에서 수도 타슈켄트를 제외하면 안디잔 주와 페르가나 주가 가장 높은 편이다.
참고로 인접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인구는 현재 1,518만 명이다.
언어
공식적으로 우즈벡어를 사용하며 민족 간의 소통언어로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우즈베크어 등 투르크어족 계열 언어가 중심이지만,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우즈베크어(74.3%), 러시아어(14.2%), 기타 언어(타지크어, 카자흐어, 투르크멘어)(4.4%) 순으로 되어 있다.
아직까지 러시아어만 알아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지방으로 가면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꽤 많다. 최근에는 우즈벡 정부의 민족주의 노선에 따라 거리의 대부분 간판이나 공식서류가 거의 우즈벡어로 되어 있으며 2004년부터는 100% 우즈벡어로만 공식 서류가 발행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계와 고려인 등 우즈벡어를 모르는 소수 민족들은 생활의 불편과 함께 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종교
주민의 88%가 무슬림이며, 무슬림 중 70%는 수니파, 20%는 시아파이다. 원래 불교와 조로아스터 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8 ~ 9세기 경, 이슬람 제국의 침략으로 이슬람화가 되었다. 1991년 독립 이후에는 이슬람 부흥 운동으로 자발적인 이슬람 교육과 여성들의 베일 착용이 증가하였다.
교육
1991년 이후, 로마 문자 차용, 의무 교육의 단축 등을 시행하여 교육 제도를 개혁하였다. 학생 수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2001년 기준)하며, 평균 취학 기간이 11.4년, 문자 해독률이 99.1%, 교육 비용이 국내총생산의 7.9%를 차지한다.
경제
과거 우즈벡 민족은 실크로드 상의 무역에 종사했던 민족이다. 우즈벡 민족에 대해서 "우즈벡 사람들은 달나라에 가서도 장사를 할 사람들이다."라는 카자흐 속담이 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면화 재배가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이 석유자원의 개발을 통하여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우즈벡 민족이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서 경제적인 부를 가장 많이 축적했었다고 여겨진다.
문화
1991년 독립 이후, 이슬람 문화가 복원되었다. 전통 문화로는, 4분의 3박자의 민요와 '차반'을 입고 노래와 춤을 추는 것이 있다. 또한, '바자르'라 불리는 노천 시장과, '유르트'격인 '마할라'라 불리는 마을 단위 조직이 있다.
대외 관계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이후, 독립 국가 연합 국가들과의 기존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회교 근본 세력을 제외한 채, 이슬람 국가들과 해양 진출을 위해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과의 관계를 넓혀가고 있다. 본문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가을의 노래 /안나 게르만
러시아 로망스의 대명사 Anna German (1936~1982)
우즈베키스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폴란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안나 게르만은지질학을 공부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우연한 기회에서게 된 무대가 국제가요제로 이어져 최고상을 받으면서그녀는 뜻하지 않은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花卉.園藝.植物.田園 > 여행(旅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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