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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천태산 (天台山)

호남인1 2011. 3. 12. 19:24

 

 

 

영동 천태산 (天台山)

홈페이지 /http://tour.yd21.go.kr/html/to...

 

 

높이 715m의 천태산은 고려시대 천태종의 본산이었기 때문에 산 이름도 천태가 된 영동의 명산으로'충북의 설악'이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좋다.

 

천태산은 뛰어난 자연경관과 잘 정리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많은 명소가 산재되어 있어 등산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가족단위 등산지로 각광받는곳이다.

 

천태산 은행나무

 

주변에 영국사(寧國寺)를 비롯하여 양산8경의 대부분이 있을 만큼 산세가 빼어나 충청북도의 설악산이라 불린다.특히 양산팔경이 이곳 천태산 영국사를 제1경으로 시작되고 많은 문화유적들이 그 신비함을 더해주는 산이다.

각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 원각대사가 창건하고 효소왕이 육궁백관(六宮百官)을 인솔하고 피난했다는 전설이 있는 옥새봉과 육조골이 있고, 고려 문종때 대각국사가 국청사(國淸寺)라 한 것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했다 하여 영국사(寧國寺)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천태산은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밧줄을 타고 오르는 암벽등산코스 등 여러곳의 등산로가 개설돼 있어 가족단위 등산지로 전국에 이름난 산이다.

또한 영국사를 오르는 골짜기 풍경이 매우 아름다우며, 기암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용추폭포(3단폭포)와 천년정도로 추정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가 영국사를 찾는 길손들을 맞이한다.

 

 

등산코스는 영국사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부터 4개가 있다.

미륵길이라 불리는 A코스는 최북단에서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이어지는 최단 코스이고,

관음길이라 불리는 B코스는 영국사로 직접 이어지는 가파른 코스로 최근 폐쇄되었다.

원각국사길이라 불리는 C코스는 영국사 남쪽 원각국사비에서 구멍바위를 지나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남고갯길로 불리는 D코스는 남고개로 이어지는 길로 하산할 때 많이 이용한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서대산,남쪽으로 성주산과 멀리 덕유산·계룡산·속리산이 보인다.하산은 남쪽 주능선을 따라 남고개를 향해 내려온다.갈림길에서 오른쪽은 암릉구간이고 왼쪽은 우회 등산로이다.

 

 

 

자가용 이용시 경부고속도로 옥천I.C.-> 4번국도->이원면->501번 지방도->개심저수지->율치->양산면 누교리->영국사현지교통 이용시 영동읍내에서 영국사 입구를 거쳐가는 누교리, 명덕리 방면 시내버스 이용 후 영국사까지 도보1시간

 

 

<등산코스>주차장 →용초폭포 →은행나무 →송판서묘 →암벽 →정상 →헬기장 →영국사 (산행거리 4.6km, 약 3시간20분소요)

 

 

 

 

• 전해오는 이야기 : 천태산 영국사와 공민왕

 

• 영동에서 양산쪽으로 악20km 나가면 양산면 서북쪽 지점에 영국사(寧國寺)라는 오래된 절이 있는데 이절에는 고려조의 공민왕의 발자취가 서리어 있다.

 

서기 1361년(공민왕 10년) 11월 원(元)나라의 한산동(漢山童)을 두목으로 하여 일어났던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기 위해 공민왕은 노국(魯國)의 공주와 대신들을 데리고 피난의 길을 떠났다. 남으로 길을 재촉하던 공민왕은 영동 양산면 지금의 누교리(縷矯里)에 머물게 되었다.

 

영국사의 그 당시 이름은 국청사(國淸寺)이기 때문에 왕이 부처님 앞에 나가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평안을 빌려고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내린 폭우로 도무지 내를 건너 갈 수가 없었다. 개경(開京)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가슴 아픈 일들 뿐이였다. 성 안의 부녀자와 노인과 어린이들은 다투어 성을 빠져나갔다지만 그나마 피난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홍건적의 무리에 짓밟혀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킨다는 소식이었다.

 

공민왕이 이곳 양산이 아니라 이천(利川)을 지날 때 이미 홍건적은 개경(開京)을 함락 했고 그 뒤 수개월 동안 사람과 가축을 살해하고 왕궁을 불사르는 등 잔악한 행동이 그칠 사이가 없이 일어 났다고 한다.

때마침 개을 건너 천태산(天台山) 쪽에서 종소리가 울려 왔다. 공민왕은 깜짝놀라 좌우를 돌아 보았다. 「이 부근에 절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종소리가 아름다운 절인줄은 몰랐구나」 왕비와 왕자 그리고 대신들은 하나같이 공민왕의 눈치만을 살폈다. 대신 한 사람이 설명 하기를 「저 절은 일찍이 신라 때 원각국사(圓覺國師)께서 세운 절로써 처음에는 만월사(滿月寺)라 하였다가 문종대왕(文宗大王)당시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주지로 온 뒤로 국청사(國淸寺)라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옵니다」 하고 아뢰었다.

공민왕은 눈이 번쩍 띄었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문종(文宗)의 아들로 천태종(天台宗)을 일으킨 분이 아닌가 의천(義天)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저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나라와 백성이 평안함)을 빌어보고 싶었다.

 

공민왕의 뜻을 알아 채린 대신들은 산에 올라 칡넝쿨을 걷어 오라 일렀다. 그들은 수행원과 인근 마을 주민들이 걷어 온 칡넝쿨을 새끼줄처럼 꼬아서 이를 테면 구름 다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공민왕은 완성된 다리를 밟고 국청사 부처님 앞에 나아갔다. 왕비 왕자 그리고 대신을 데리고 공민왕은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

그래서 국청사는 공민왕이 다녀간 뒤 왕이 나라안 백성들의 편안함을 빌었다하여 편안할 영(寧)자 나라 국(國)자를 써서 (寧國寺)로 고쳐 부르기 시작 하였으며 공민왕이 칡넝쿨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간 마을을 누교리(樓橋里)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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