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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pyramid)와 스핑크스(그리스어: Σφίγγα)

호남인1 2011. 2. 26. 22:10

 

 

 

피라미드(pyramid)와 스핑크스(그리스어: Σφίγγα)

 

 

 

피라미드(pyramid)

 

피라미드(pyramid)는 일반적으로 정사각뿔 꼴의 고대 유적을 가리킨다. 고대 중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앙아메리카 등 많은 문명권에서 피라미드 형태의 유적을 만들었다. 고구려의 태왕릉이나 장수왕릉등도 정사각뿔 형태이므로 피라미드의 일종이다.

 

장수왕릉

 

 

 

3대피라미드-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그중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적, MAk Did he 특히 기자의 3대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대체로 국왕, 왕비 등 왕족의 무덤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무덤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라미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피라미스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 80여 기가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90킬로미터나일 강 서안 사막 연변에 점재해 있다.

수단나파타메로에에도 피라미드가 있다. 전자는 기원전 8~7세기나파타 왕국의 것으로 18 기, 후자는 기원전 3세기 이후의 것으로 약 50 기가 있다.

 

3대피라미드-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 이집트 카이로 남서쪽 13 km 기자 고원

 

피라미드에 대해 남아있는 최고의 기록은 그리스 역사가헤로도토스의 《역사》2권에 있다. 거기에는 '기자의 대(大)피라미드에 관하여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지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피라미드는 높이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문화재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고대 이집트의 마스타바

 

피라미드는 갑자기 나타난 건축 양식이 아니라 이전의 마스타바라는 벽돌식 단층 무덤에서 발전하였다. 마스타바는 무덤으로 이곳에 왕을 매장하였다. 마스타바는 아랍어로 직사각형의 벤치라는 의미이다.

고대 이집트의 마스타바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그러던 중 파라오 조세르(Djoser) 시대에 이 마스타바를 더 높고 웅장한 형태로 변형하여 다층 마스타바 혹은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임호테프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스네프루의 무너진 피라미드

 

이후 파라오 스네프루(Sneferu, Snefru)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피라미드의 형태의 건축물을 건설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당대의 피라미드 건축 경험 부족으로 인하여 붕괴하고 만다.

스네프루의 무너진 피라미드

 

 

 

스네프루의 굴절 피라미드

 

스네프루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피라미드를 지었는데 피라미드의 각이 너무 예각이었던 탓에 다시 붕괴 위험에 시달렸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공사 중에 각도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굴절 피라미드라고 한다.

 

스네프루의 굴절 피라미드

 

 

스네프루의 붉은 피라미드

 

그러나 스네프루는 굴절 피라미드로 만족할 수 없었고, 더욱 상징적이고 미적으로 완성된 피라미드를 짓기 위한 재차의 노력을 했으며, 이 건축 사업은 성공적으로 끝나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집트 피라미드의 이미지와 같은 건축물이 완성되었다.

 

스네프루의 붉은 피라미드

 

 

 

쿠푸의 대피라미드

 

다음의 파라오 쿠푸(Khufu)는 이미 완성된 선대 파라오의 피라미드에서 그 규모를 극대화하여 대규모의 피라미드를 완성했다. 이러한 거대한 피라미드는 이전까지 고대 이집트인들의 끊임없는 노력, 건축 기술의 개량과 발전이 바탕이 된 것이며 단시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이후 거대한 피라미드가 정점을 이루고, 평민들까지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게 되면서 사람 크기 정도의 작은 피라미드들도 만들어졌다. 

 

 

 

4각형 토대에 측면은 3각형을 이루도록 돌이나 벽돌을 쌓아올려 한 정점에서 만나도록 축조한 기념비적 구조물.때로는 측면이 사다리꼴을 이루어 꼭대기가 평평한 것도 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이집트·수단·에티오피아·서아시아·그리스·키프로스·이탈리아·인도·타이·멕시코·남아메리카, 그리고 태평양의 몇몇 섬에 지어졌다. 이집트, 중앙 아메리카, 남아메리카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하다.

 

쿠푸의 대피라미드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장제용(葬祭用) 건축물이었다. 고왕국 창건 때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2,700년 동안 계속 지어졌다. 그러나 피라미드 건축이 정점에 이른 시기, 즉 피라미드 전성시대는 제3왕조와 함께 시작되어 제6왕조와 더불어 종말을 고했다(BC 2686경~2345). 이 기간에 피라미드는 왕묘의 표준적 형태로 지어졌으며 독립 구조물이 아니라 건축물 복합체의 일부였다. 어쨌든 고왕국 시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피라미드 자체로서 무덤을 포함하거나 무덤 위에 세워지며 사막 높은 곳에 구획된 경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피라미드 옆에는 장제신전이 있으며 둑길을 따라 내려가면 흔히 계곡사원으로 불리는 건물이 나오는데, 이 건물은 경작지 끝에 지어졌고 운하를 통해 나일 강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집트에서 약 80기의 왕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으나 많은 수가 깎여내려 폐허더미로 변했고 보물은 오래 전에 약탈되었다.

 

잉카의 미라미드

 

 

피라미드의 원형은 왕조시대 초기부터 이집트에 알려져 있던 무덤형태인 마스타바이다. 마스타바는 진흙벽돌이나 돌로 만든, 꼭대기가 평평한 4각형 구조물로 지하 매장실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3왕조의 2대 왕인 조세르는 임호테프를 건축가로 채용해 처음으로 돌만을 사용한 마스타바를 지었다. 그 높이는 8m였고 각 변의 길이가 63m인 정4각형 평면의 구조물이었다. 일단 완성된 마스타바 위에 4면 바닥에서부터 증축되어 꼭대기로 갈수록 좁아지는 4각형 구조물이 덧붙음으로서 더욱 높아졌다. 이렇게 해서 조세르가 지은 애초의 마스타바는 서로 다른 6개의 층을 갖는 높이 60m, 밑변이 가로 120m, 세로 108m에 이르는 계단형 구조물이 되었다. 사카라에 있는 이 기념물은 계단식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으며 이집트에 세워진 중요한 석조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하부는 지하 복도와 방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은 깊이 25m, 너비 8m의 중앙 통로인데, 그 아래에 아스완산(産) 화강암으로 만든 지하 매장소가 있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길이 544m, 너비 277m의 거대한 벽으로 둘러친 경내에 있으며 왕이 사후세계에서 쓸 물품을 놓아두던 다른 석조구조물들의 잔해가 남아 있다.

 

 

사카라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다슈르에 있는 '뭉툭한', '잘못된', '굴절', '장사방형'(長斜方形) 피라미드로 불리는 특이한 모양의 구조물은 엄격한 4각뿔 무덤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나타낸다(→ 뭉툭한 피라미드). 제4왕조 스네프루가 세운 이 피라미드는 각 변의 길이가 188m, 높이는 약 98m이다. 특이하게도 이중경사가 있어서 중간 위로는 기울기가 달라지는데, 아래쪽이 위쪽보다 더 가파르다. 조세르의 계단식 무덤보다 순수한 4각뿔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기자에 있는 쿠프·카프레·멘쿠레 등 파라오의 피라미드

 

 역시 스네프루 때 지은 것으로 보이는 마이둠의 기념비적 구조물은 당초 설계와는 다른 모양이지만 순수한 4각뿔 형태이다. 초기의 구조체가 점점 확장되어 거대한 8단의 석조물 더미가 되었고, 이후 테라스를 돌로 메워 연속된 경사면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구조물 전체를 평탄한 석회암층으로 뒤덮어 기하학적으로 순수한 4각뿔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많이 파괴된 결과, 지금은 70m 높이의 3단 피라미드 모습이다. 처음부터 4각뿔로 설계, 시공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묘는 다슈르에 있는 석조 '북피라미드'로, 일설에 의하면 스네프루가 세운 것이라 한다. 밑변의 길이는 약 220m, 높이는 104m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큰 것은 기자에 있는 쿠프·카프레·멘쿠레 등 파라오의 피라미드이다.

 

 

 

 

 

 아메리카의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중부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태양 피라미드와 달 피라미드, 치첸이트사에 있는 카스티요, 그밖에 안데스 산맥의 촌락에 남아 있는 잉카 문명과 치무 문명의 다양한 유적이 있다. 아메리카의 피라미드는 보통 흙으로 쌓아 표면에 돌을 입힌 것으로 전형적으로 계단식이며 꼭대기에 대좌나 신전을 올린다. 태양신전 피라미드는 밑변이 가로 220m, 세로 230m로, 한 변이 길이가 230m인 정4각형을 이룬 기자의 피라미드(쿠푸왕이 축조)에 견줄 만한 규모이다.

 

 

 

 

 

엘 카스티요 피라미드 (남미)

 

엘 카스티요 피라미드

 

 

 

 

돌이나 벽돌로 쌓아 올린 삼각탑 유적. 이집트의 고왕국시대(BC 28~BC 23세기)에 왕묘로 축조된 것이 유명하다. 피라미드의 원형은 무덤 형태인 마스타바로 계단 모양의 피라미드나 경사각이 작은 각추형이 있었으나, 제4왕조 이후에는 경사각이 약 50。 되는 정사각추가 되었다. 그 구성을 보면 정확히 동서남북에 면하여 토대를 만든 다음 북쪽 피라미드 본체를 뚫고 지하의 암반에 달하는 하강로가 설치되며, 그 안에 묘실이 있다. 동쪽에는 제례신전이 있고, 그곳에서 낭하가 길게 뻗어 나일 계곡의 유역에 있는 신전에 이른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기자에 있는 파라오의 피라미드로 밑변 길이 230m, 높이 약 146.5m(현재는 137m) 평균 2.5t의 다듬은 돌 230만 개를 쌓은 것이다. 다슈르에 있는 굴절 피라미드는 중간에서 경사각이 바뀌는 희귀한 모형으로 밑변 길이 약 220m, 높이 약 104m이다. 아메리카의 피라미드는 흙으로 쌓아 돌로 표면을 덮었는데, 멕시코의 태양 피라미드와 카스티요, 잉카 문명의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스핑크스(그리스어: Σφίγγα)

 

기원전 530년 전에 만들어진 스핑크스 석상

 

스핑크스(그리스어: Σφίγγα)는 그리스어로 ‘교살자’라는 의미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괴물이다. 인간 여자의 머리와 가슴을 지녔고, 몸은 사자이며, 등에는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다.

 

 

 

 

스핑크스 [sphinx]

 

이집트와 그리스의 미술 및 전설에 나오는 중요한 이미지로, 사자의 몸과 인간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신화적인 동물.

 

'스핑크스'라는 말은 그리스의 문법학자들에 의해 '묶다' 또는 '압착하다'라는 뜻의 동사 '스핑게인'(sphingein)에서 파생된 것이나, 그 어원은 전설과 무관하며 분명하지 않다.

전설상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는 보이오티아 테베의 날개달린 스핑크스로, 그것은 뮤즈가 가르쳐준 수수께끼(목소리는 같지만 발이 4개가 되기도 하고 2개가 되기도 하고 3개가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묻고 그 답을 요구하여 틀린 답을 말하는 사람을 잡아먹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고 한다. 마침내 오이디푸스가 정답(유아기에는 4발로 기고 자라서는 2발로 걷고 노년기에는 지팡이에 의지하는 사람)을 맞추자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이 이야기에서 스핑크스가 전지(全知)하다는 전설이 나왔음이 분명한데, 오늘날에도 스핑크스의 지혜는 속담이 될 만큼 유명하다.

미술품으로서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는 이집트 기자에 있는 거대한 와상(臥像) 스핑크스로, 카프레 왕(제4왕조의 제4대 왕, BC 2575경~2465경)의 재위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그 왕의 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이집트 역사를 통해 스핑크스는 계속 왕의 초상으로 사용되었다(그러나 아랍인들은 기자의 스핑크스를 아부 알 하울의 이름 또는 '공포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음). 스핑크스는 이집트인의 영향으로 아시아에 알려졌지만, 아시아에서는 스핑크스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메소포타미아에는 본래 스핑크스가 없었으나, BC 1500년쯤 레반트 지방에서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아시아의 스핑크스가 이집트의 원형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사자의 몸에 날개를 덧붙인 데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그뒤 아시아 및 그리스 세계에 계속 나타났다. 또다른 혁신은 BC 15세기에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여성 스핑크스였다. 그것들은 도장이나 상아제품·금속제품에 새겨졌는데, 대개 한 발은 든 채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었으며, 사자나 그리핀(독수리 반 사자 반) 또는 다른 스핑크스와 짝지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BC 1600년경 그리스 세계에 처음으로 스핑크스가 등장했다. 중기 미노아 시대가 끝날 무렵의 크레타 유적들과 후기 헬라도스 문화기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미케네의 구덩식[竪穴式]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은 날개 달린 것이 특징인 스핑크스를 보여준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아시아의 스핑크스에서 유래했지만 모습은 달라서, 대개 꼭대기가 불꽃처럼 튀어나온 납작한 모자를 썼다. 그것들은 후에 전해진 전설과 무관하며, 그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다.

 

 

BC 1200년 이후, 아시아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것과 비슷한 형태와 자세를 지닌 스핑크스들이 계속 나타났지만, 그리스 미술에서는 약 400여 년 동안 스핑크스가 사라졌다가, BC 8세기말경에 다시 나타나 BC 6세기말까지 널리 퍼졌다. 동방의 모티프와 자주 관련되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동양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하며, 그 모습도 청동기시대 그리스 스핑크스에서 직접 파생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후기 그리스 스핑크스는 거의 언제나 여성이었고, 대개 다이달로스 양식의 당대 조각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길게 늘어진 가발을 썼으며, 몸은 우아해졌고 날개는 아시아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곡선 형태를 띠었다. 스핑크스들은 꽃병이나 상아제품·금속제품 등의 장식에 쓰였고, 고대 말기에는 사원의 장식물로도 사용되었다. 스핑크스들은 만들어진 배경이 확실하지 않으므로 그 의미를 판정할 수 없지만, 그것들이 사원에 있는 것으로 보아 보호기능을 지녔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5세기쯤에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가 만나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꽃병에 나타났는데, 대개 스핑크스는 기둥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예를 들면 보스턴에 있는 놀란이 만든 적회식 암포라). 고전기의 다른 기념물들은 오이디푸스가 무장을 하고 스핑크스와 싸우는 것을 보여주는데, 전설의 초기 단계에서는 스핑크스와의 대결이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러한 단계에 대해 문학은 아무런 단서도 제공하지 않지만 인간과 괴물과의 싸움이란 선사시대부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미술의 보편적인 주제였으므로, 그리스 미술은 자문학(自文學)에는 없는 이러한 주제를 중동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