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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피라미드의 비밀을 찾아서 (4)

호남인1 2010. 10. 17. 00:22
<피라미드 파워〉

   
▲ 피라미드 파워의 실험-우유와 양파 등을 실험한 결과 우유는 중앙 부분이 다른 것보다 다소 늦게 부패했고 양파는 가장 빠른 성장을 보였다  ⓒ
인간이란 원래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그러므로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것을 목격하거나 들었을 때 겁을 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규명하려고 든다. 이러한 의미에서 ‘피라미드 파워’라든가 UFO등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대부분 과장된 설명이거나 거짓말로 판명되지만 그 중에서도 피라미드 파워는 매우 흥미 있는 소재를 갖고 있다.


피라미드 파워란 피라미드 형태가 현대 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어떤 특이한 현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피라미드에서 일어난다는 신비한 현상만으로도 피라미드가 세계의 불가사의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이다.

독일 굴지의 전기 회사 창립자인 지멘스는 1859년 기술자들과 함께 전신 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해 홍해로 왔다가 이집트 기자에서 멈추게 되었다. 호기심이 많은 지멘스는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잠시 휴식 후 무심코 손가락을 들어본 그는 전기가 미약해서 깜빡거리는 것 같은 딱딱 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에 지멘스는 한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금속 마개로 된 포도주 병을 젖은 종이로 싸서 전기 충전기 시스템인 라이든 병을 즉석에서 만들었다. 그 병은 곧 전기로 충전되었으며 지멘스는 너무 기쁜 나머지 손에 불똥이 튀는 것조차 잊었다.

물론 이 실험의 결과 자체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고층 건물의 뾰족한 부분에서도 이와 같은 결과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인 철물 장수 보비는 보다 더 이상한 현상을 경험했다. 1920년경에 그는 피라미드 안에 있는 파라오의 방에서 고양이와 다른 동물들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들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들은 주위의 습기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메말라 미라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미라에 방부 조치가 실패하더라도 피라미드 안에 놓여짐으로써 영구 보존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프랑스의 니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온 보비는 호기심에서 한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나무로 피라미드 모형을 만들어놓고 북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그 안에 막 죽은 고양이 한 마리를 놓아두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 고양이는 미라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다른 죽은 동물로도 같은 실험을 해보았고 심지어는 고기와 달걀로도 해보았다. 피라미드 모형 내부에 넣어둔 유기물은 모두 부패하지 않고 미라가 되었다. 그는 피라미드 안에 부패를 방지해주고 급속한 탈수 현상을 일으키는 어떤 작용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비의 실험을 통해 영감을 얻은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전기 기술자 칼 두르발은 두꺼운 종이로 15센티미터 높이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높이의 3분의 1정도 되는 부분, 즉 쿠프 파라오의 방이 있는 위치에 면도날을 놓았다.

놀랍게도 그 면도날은 전보다 훨씬 더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는 이 면도칼로 200번까지 면도를 할 수 있었다. 그는 피라미드의 내부 조건이 면도날의 결정 구조를 초기 상태로 되돌려주기 때문에 날이 다시금 예리해지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두르발은 1959년에 처음에는 종이로, 후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쿠프 파라오의 면도날 갈기’라고 불리는 특허를 획득하였다.

피라미드의 ‘이상한 힘’에 대한 목격담이나 체험담도 많다.
피라미드 형태의 방에 거주할 경우 상처가 났을 때 고통이 적어지며 잠을 잘 자고 활달해지며 성욕도 증진된다는 보고도 있고, 어린아이들이 예전보다 얌전해진다는 보고도 있다. 피라미드 안에 넣어두면 담배가 놀랄 만큼 순해지며, 위스키도 쏘는 맛이 한결 덜해지고 오렌지 맛도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달걀을 갖고 실험한 결과도 주목을 받았는데, 피라미드 안에 두었던 것은 노른자위가 떠올랐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반대로 노른자위가 흰자위 속에 가라 앉아버렸다는 것이다.

   
▲ 천체창과 현실-대피라미드에만 현실에 일명 천체창이 있다  ⓒ
세르지 킹은 인공 피라미드 안에서 명상을 하는 동안 금속으로 된 포크를 휘게 할 수 있었다고 하였고, 이에 대한 실험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다. 꼭 피라미드 형태 속에 있지 않더라도 천장에 소규모 피라미드가 매달려 있을 경우 그 피라미드의 사선 내에 있으면 피라미드 효과가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피라미드가 갖고 있는 놀라운 능력을 과학자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곧 면도날이 왜 날카롭게 갈리는지에 대한 분석이 제시되었다. 두르발의 면도날은 수많은 실험에서 실제로 잘 깎인다고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은 금속이든 나무든 내부에 수분 분자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피라미드 구조는 마치 안테나와 같아서 에너지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공명 혹은 진동의 장을 형성한다. 이것은 이 장 안에 놓여 있는 어떠한 물체 내부에 실질적으로 분자 이동을 만들어낸다. 결국 피라미드 모양 내에 자리하고 있는 공명이나 진동의 장이 수분 분자를 끌어당기는 탈수 현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탈수는 강철로 만든 면도칼의 분자 구조에 빈자리를 만들어 자기장 내부에 흐르던 분자들을 면도칼의 날 쪽으로 이동하게 하여 칼날이 다시 서게 된다는 것이다.

과일이나 채소의 신선도 유지도 탈수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일이나 채소들을 피라미드 안에 놓아둘 때 위와 같은 작용에 의해 오랫동안 그 신선도를 유지하게 되며 그러다가 썩지 않고 단지 말라붙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피라미드 효과는 탈수 건조 현상과 생명체 활성화 현상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것은 피라미드 효과가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신비성만으로 포장될 성질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피라미드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피라미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피라미드 파워의 생명체 활성화 효과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 형상으로 발현되는 몇 가지 신비로운 효과들이 생겨나는 실제적인 요인이 무엇인가조차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은 피라미드 효과가 일반 자연 과학의 이론이나 정설과는 달리 기대 효과가 통일성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보비의 실험도 엄밀히 재조사되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조사회는 보비가 주장한 방법 그대로 쿠프의 대피라미드 안에서 실험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험에서 파라오의 방에 놓아둔 음식물들이 원칙적으로 부패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질학자 찰스 가죠와 인류학자 스코트는 “43일 만에 꺼낸 달걀은 악취가 나고 썩어 있었다”라고 실험 결과를 적고 있다.

국제문화자원개발기획사인 ICRD가 우리나라 여러 곳(서울, 부산, 전주, 창원)에서 열었던 〈이집트 대탐험전〉에서도 ‘피라미드의 파워’를 공개적으로 실험하였다. 달걀, 우유의 부패 정도와 양파, 씨앗의 발아 실험 등이 소형 피라미드 안에 여러 시료와 함께 넣어져 진행되었는데, 피라미드 중앙 부분에 위치하였던 우유의 경우 다른 것보다 다소 늦게 부패하였고 양파의 경우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보였다. 그러나 씨앗의 발아 등 다른 실험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여러 번의 실험에서 어떤 일정한 법칙을 발견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실험을 중단하였다.

일반적으로 피라미드의 효과가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신중한 의견을 제기하는 과학자들도 이와 같이 효과가 지속적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피라미드 안에서 식물을 재배한다면 식물의 생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여러 번 발표되었다. 피라미드를 이용하면 식물 생장이 2~4배까지 증진된다는 보고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이집트 대탐험전>의 실험과 마찬가지로 항상 같은 결과를 갖고 오지 못했다. 대체로 발아가 빨리 진행되고 훨씬 튼튼하다는 설명이지만 공들여서 농사를 지을 값어치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더구나 넓은 면적에 적용할 경우 경제성이 문제가 된다는 지적도 많이 있다. 그다지 실용적이지는 못하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피라미드 파워가 너무나 과장되어 있다는 지적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과학적인 결과물이 아직 없다는 것만으로 피라미드 효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피라미드 효과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학자들 중에서도 심리적인 효과(플라세보)는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라미드 파워’가 완전히 규명되기 전까지는 심한 과장이나 선전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대피라미드의 보물〉
   
▲ 피라미드 단면 상세도-쿠프의 현실만 중앙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
대피라미드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은 쿠프 파라오가 사망했을 때 부장되었을 엄청난 보물들이 과연 현재에도 대피라미드 안에 보관되어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대피라미드에서 파라오의 현실로 추정되는 방 즉 현재 비어있는 석관이 있는 공간은 진짜 파라오의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 말은 대피라미드 내에 비밀의 방, 즉 진실한 쿠프의 현실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은 이러한 가정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보자.
현재 파라오의 현실이라고 알려진 왕의 방이 진짜 현실이 아니라고 학자들이 추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현실이 정중앙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신이자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런 신의 안식처를 정중앙이 아닌 곳에 안치시켰다는 것은 고대인의 믿음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진실한 파라오의 무덤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설계 미스라는 말도 있으나 대피라미드의 각 변이 동서남북에 정확히 일치하고 그 높은 곳에서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거대한 돌들을 정확하게 맞추어 끼운 기술들을 감안할 때 정중앙을 정확하게 찾지 못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두 번째는 현재 파라오의 방으로 알려진 현실 상부에 있는 다섯 개의 하중 분산용 공간이 하부에 있는 현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 즉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방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적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구조학자들이 가능한 가정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세 번째는 파라오의 현실에는 쿠프의 빈 석관만 남아 있는데 820년 칼리프 알 마문이 석관을 열었을 때에도 아무런 부장품이 없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현실이 진정한 쿠프의 현실이 아닐지 모른다는 점이야말로 대피라미드를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요소이다. 그것은 아직도 대피라미드 안에 수많은 보물들이 남아 있으며 언젠가 세상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와 같은 전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대피라미드 전체를 보다 정확하게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피라미드를 무작정 훼손하면서 연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대 유산의 연구가 어려운 이유이다. 대피라미드의 보물을 찾아내기 위한 지금까지의 작업과 연구에 대해 알아보자. 이것은 대피라미드의 수난사와도 직결된다.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정복자인 아랍인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것은 대피라미드가 아직도 보물을 보관하고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피라미드가 도굴되었다 하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도굴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대피라미드의 도굴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는 아라비아의 유명한 칼리프 아룬 알 라시드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의 작업을 956년에 사망한 여행가이자 학자인 알 마수디가 기록했다. 쿠프의 현실까지 진입하기 위한 작업은 다음과 같다.

‘왕의 방까지 도달하는 통로를 찾기 위해 우선 외부의 석회석들을 제거해야 했다. 그들은 석회석을 녹이기 위해 수많은 식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이 작업이 다소 성공을 거두자 성벽을 파괴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거중기와 기계들이 투입되었다.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들인 끝에 노동자들은 수천 개의 금화가 있는 한 4각형의 방에 도착하였다. 그 금화는 각자가 1디나르(7세기말부터 수세기 동안 사용된 아라비아의 화폐단위)의 무게를 가졌다. 이때 발견된 금화가 대피라미드를 조사하는데 투입한 예산과 거의 비슷했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발굴하려고 했으나 워낙 작업이 어렵고 입구 부분이 붕괴될 우려가 있자 쿠프의 무덤을 찾는 일을 포기했다.‘

아버지 아룬 알 라시드의 아들인 칼리프 압둘라 알 마문(812~833 재위) 역시 대피라미드에 관심을 가지고 820년에 이집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는 매우 특별한 목적으로 대피라미드를 반드시 발굴하겠다고 결심한다. 그것은 그의 과학적 지식욕 때문이다.

알 마문은 과학 특히 천문학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지구와 천체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 자료들을 모으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발굴하다가 포기한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 안에 고대의 아주 정확한 지도들과 피라미드 건축가들이 건설할 때 사용한 자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피라미드를 발굴하는 것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결정하고 대피라미드를 발굴할 계획에 착수한다.

문제는 발굴에 필요한 엄청난 자금 확보였다. 아버지가 대피라미드를 조사했을 때 금화를 발견했다는 것도 장애였다. 아버지가 이미 대피라미드를 발굴하여 보물들을 꺼내 왔다는 것은 대피라미드 안에 보물로 발굴 경비를 충당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므로 발굴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귀를 번뜩이게 하는 정보가 들어왔다. 아버지가 금화를 발견한 곳은 파라오의 현실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파라오의 현실이 아닌 방에서 엄청난 금화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진짜 파라오의 현실에 더 많은 보물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과 다름아니다.
알 마문은 수많은 인원을 바그다드에서 대피라미드로 직접 파견한 것은 물론 자신도 현장에 도착하여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대피라미드 탐사도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방법론도 알 라시드가 사용한 것과 같았다. 장애물로 나타난 돌이 깨질 때까지 불로 가열한 다음 차가운 식초를 뿌렸다.

그가 아버지인 알 라시드와 다른 점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 라시드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커다란 돌들 때문에 결국 작업을 포기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무작정으로 외부로부터 돌을 깨면서 들어갔다. 무려 300미터 두께의 벽을 파 들어간 후에 그들은 마침내 1.2미터 높이의 급경사로 된 비좁은 회랑에 도착했다. 그 회랑의 상부 쪽 끝에서 그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만든 입구를 발견했는데 그 입구는 지상으로부터 15미터 높이에 있었고 돌로 차단된 문에 의해 막혀 있었다.

그들은 이 돌들도 제거하고 회랑을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제일 처음에 건설되었다가 포기되었던 방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쿠프의 대피라미드가 전설처럼 막대한 보화를 감추고 있다면 다른 곳을 찾아야만 했었다.

알 마문은 회랑으로 다시 돌아와 위로 향하는 또 다른 회랑을 찾았다. 다행하게도 곧 상부로 연결되는 회랑을 발견했다. 그러나 굴착 작업은 더욱 더 어려웠다. 회랑을 막고 있는 커다란 화강암 돌덩이가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착같은 작업으로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갔다. 상상할 수 없는 희생과 고통스러운 작업 끝에 위로 향하는 아주 낮은 회랑에 도착했다. 수평으로 된 통로가 교차되어 있었다.

이 수평 통로는 각 변이 5.5미터인 정사각형 방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천장은 6미터 높이에 이중경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왕비의 방이라고 불리는 곳이다.(여자들은 주로 이런 곳에 매장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역시 왕비의 흔적과 보물은 없었다. 그들의 실망은 대단했다.

그러나 작업은 계속되었고 인부 중에 한 명이 조그마한 방을 찾아냈다. 그곳에는 푸른색의 돌로 조각된 남자 조각상이 있었다. 이 조각상은 여러 가지 보석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된 칼이 있었고 그의 머리에는 달걀만한 루비가 있었다. 이 조각상은 알 마문이 자신의 궁전으로 갖고 갔는데 1117년에도 궁전에서 볼 수 있었다고 아랍의 역사학자 캐시는 적었다.

이에 고무되어 계속 다른 방을 찾던 그들은 수평 통로와 하향 회랑에 연결되는 부분과 또 다른 회랑이 연결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8.5미터 높이의 반들반들한 석회암으로 마감 처리가 되어 있는 대회랑이었다. 이 회랑은 계속해서 오르막길로 되어 있었는데 그 끝에는 일종의 대기실이 있었다. 이 방을 통하여 피라미드의 가장 큰 벽에 도달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현재 쿠프의 현실로 불리는 곳이다.

알 마문은 손에 횃불을 든 채, 서둘러서 내부를 보기 위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 역시 비어 있었다. 붉은 색의 화강암 벽을 따라 적갈색의 돌로 된 다소 파괴된 석관과 몇몇의 파손된 잔해만이 있을 뿐이었다. 석관은 통로보다 크기 때문에 이 방을 만들기 전에 이미 놓여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당혹한 그들은 보물이 은닉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하에 벽과 바닥의 일부를 부수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진짜 현실은 따로 있다>
   
▲ 1993년 3월 간덴브링크의 우푸아우트가 찍은 대피라미드의 숨겨진 문-이 문 뒤로 공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
일부 학자들은 알 마문이 대피라미드의 현실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다는 역사적인 사실과 구조적으로 여러 부분에서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은 쿠프의 진짜 현실이 또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즉 대피라미드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꿈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철저하게 도굴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선 알 라시드와 알 마문이 쿠프의 대피라미드의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정황도 목격자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한 증인은 쿠프의 석관 안에서 황금으로 덮이고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미라를 발견했고 머리 근처에서 달걀만한 루비를 발견했다고 했다. 반면에 어떤 증인은 쿠프의 현실에서 아무런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단지 미라만 있었다고 했다.

피라미드에 정통한 학자들은 두 번째 증인의 말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알 마문이 피라미드를 뚫고 현실에 들어갔을 때 이미 도굴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쿠프의 현실 안에서 커다란 루비 등 보물을 발견했다는 것도 알 마문이 발견한 조각상에서 발견한 보물이 와전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약 4천500년 전에 건설되었다. 이집트에 있는 모든 피라미드는 도굴되었으며 신왕조가 건설한 왕가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의 무덤들도 모두 약탈당했다. 카터가 발견하여 사상 최고의 발견이라 불리는 유명한 투탕카멘의 무덤도 사실은 2번이나 도굴 당했었다.
특히 이집트 역사에는 왕조가 중단되는 등 몇 번의 극심한 혼란기가 있었는데 이 당시의 무법자들로부터 쿠프의 대피라미드가 온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뜻이다. 오히려 가장 큰 피라미드이므로 어느 지배자라 하더라도 약탈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쿠프의 대피라미드가 도굴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유력한 근거는 다음에 기초한다. 그것은 현재 쿠프의 현실이라고 알려진 공간이 사실은 ‘미끼’라는 것이다. 도굴범들의 약탈을 막기 위해 현재의 현실을 파라오의 현실처럼 꾸몄지만 그것은 가짜이고 진짜 현실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이집트학 전문가들이 이러한 주장에 동조한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에서 가짜 무덤을 만드는 것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파라오는 자신의 무덤을 3~4개 만들어 진짜 무덤이 어느 것인지를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

대피라미드를 건설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쿠프라면 여러 개의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이 무리한 일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피라미드 안에 진짜 현실을 비밀로 만들었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정통 학자들은 강력하게 반발한다.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다른 피라미드와는 달리 3개의 방과 3개의 회랑이 있으며 가장 하부의 회랑은 바위를 뚫고 만든 것이다. 또한 왕비와 파라오의 현실이라 불리는 공간과 회랑은 매우 정성 들여 건축했다. 다른 곳은 석회석으로 되었는데 이곳은 가공하기 매우 힘든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화강석은 900킬로미터 멀리 떨어진 아스완에서 갖고 온 것이며 지표면에서 42미터 높이에 있다. 하중을 경감시킨다는 목적을 가진 5개의 상부 공간을 합하면 65미터나 되며 이중 가장 작은 화강석이 5톤이며 어떤 돌은 70톤이나 된다. 이것들이 채석장에서 채취되어 피라미드 장소까지 배와 썰매로 운반되어 또 현 장소까지 올려졌는데 이 모든 작업이 미끼라는 목적을 위해 건설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쿠프의 대피라미드가 수많은 도굴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스의 스트라보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도굴되었다고 적었다.
반면에 도굴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강력한 주장 중에 하나는 도굴꾼들이 침입하여 보물들을 약탈해 갔다면 어떻게 장애물인 화강암 돌들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일부 학자들은 도굴할 때 만들어 놓은 통로가 세월이 흘러서 자연 붕괴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가설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피라미드의 외형을 볼 때 전혀 그런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도굴범들이 도굴을 완료한 후 피라미드를 원상대로 복구해 놓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추측이 아직도 엄청난 재화가 대피라미드 속 어디엔가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는 근거이다.

<피라미드 속의 탐사>
   
▲ 일본인이 발견한 통로-요시무라 교수는 왕비의 방에 또 다른 공간이 있다고 발표했지만 자료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발굴이 보류되었다  ⓒ
대피라미드 내부에 또 다른 미지의 공간이 있다는 가설은 프랑스 건축가 도르미옹과 골뎅에 의해 보다 구체화된다. 1985년 그들은 쿠프의 대피라미드를 조사하면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몇몇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돌덩어리 몇 개가 일반적인 조적법(造積法, 벽돌?블록?돌 등의 비교적 작은 개체를 모르타르로 쌓아 구조체를 만드는 방법)처럼 서로 엇갈려 포개져 있지 않고 상하로 쌓여 있으며 벽의 중간 부분에 반짝이는 돌을 여러 개 박아 넣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돌들은 가공하지 않은 채 시공되기도 했다.

그들은 이 이상한 구조가 대피라미드 내부에 비밀 공간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판단했다. 이 공간 중 하나에 쿠프의 부장품이 있을 것이고 수천 년 동안 많은 호사가들을 설레게 했던 쿠프의 진짜 관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 발견은 당시 이집트 연구자들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집트 정부는 두 건축가의 제안을 근거로 한 EDF(프랑스 전력회사)의 탐사 계획을 허가하였다. EDF의 지원을 받는 CPGF(프랑스 지구 물리학 탐사회사)는 마이크로 중력 장치를 사용하여 대피라미드 내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CPGF와 EDF가 대피라미드 복도와 대피라미드 표면의 질량을 측정하자 평균 밀도가 2.05로 나왔다.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벼웠다. 일반적으로 석회석의 밀도는 2.4이므로 2.05는 매우 낮은 수치이다.

특이한 것은 파라오의 현실 상부의 평균 밀도는 1.8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피라미드 전체를 분배해서 비교해보면 각 부분이 서로 다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 결과는 비밀의 방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더욱 부추겼다. 밀도가 낮다는 것은 빈 공간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탐사 팀은 두 건축가가 예언한 장소에서 비밀의 방이나 비밀의 복도를 발견하지 못했다. 반면에 왕비의 방으로 가는 서쪽 복도에 적은 양의 질량 결핍을 근거로 빈 공간이 있다는 결론을 짓고 수많은 토론을 거쳐 빈 공간으로 예상되는 지점의 벽을 뚫기 시작했다.
드디어 두꺼운 석회암 벽이 뚫리고 빈 공간에 도착했다는 신호가 포착되었다. 수천 년 동안 비밀스럽게 간직되었던 대피라미드의 신비가 모습을 드러내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그들은 소형 카메라를 빈 공간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나 그곳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반짝이는 고운 모래 층 외에는 어떤 것도 없었다. 즉 마이크로 중력 장치가 빈 공간이라고 지적한 장소는 모래나 잡석들만 쌓여 있는 무용의 공간이었다. 다시 한 번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그 비밀에 접근하려는 인간의 시도를 좌절시킨 것이다.

프랑스 조사단에게 미지의 공간에 대한 발굴 허가를 내주었던 이집트 정부는 사쿠지 요시무라 교수가 이끄는 일본 팀에게도 똑같은 발굴 조사 허가를 주었다. 일본 팀은 마이크로 중력 측정 장치 외에 레이더도 사용했다. 레이더를 사용한 것은 마이크로 중력 장치의 단점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왕비의 방으로 갈 수 있는 기존 복도와 평행하는 또 다른 30미터 정도의 통로를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중력 결핍은 서쪽 면에서 빠짐없이 나타났으며 새로운 통로의 크기는 4.50×3.50미터라고 했다.

이것은 프랑스 팀이 조사한 결과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학자들 간에 일본 팀의 조사에 대한 신빙성 여부로 격론이 벌어졌다. 레이더 장비는 습기를 먹은 흙이나 돌의 경우 공간 유무를 판독하기 어려우므로 일본 팀의 발표가 부정확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집트 당국은 결국 일본 팀에게 더 이상 발굴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일본 팀은 발굴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로봇은 무언가 찾았다>
   
▲ 현실로의 진입-엄청난 노력을 들여 쿠프의 현실에 진입했으나 뚜껑이 열려진 빈 석관만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
독일 팀은 프랑스와 일본 팀과는 달리 다른 이유로 대피라미드 내부를 조사하고 있었다. 1990년 8월 이집트 고고청은 <독일고고학연구소>에게 대피라미드의 환기 시스템을 설치해달라고 의뢰하였다.

독일 고고학 연구소장 라이너 슈타델만은 독일의 로봇 기술자인 루돌프 간텐브링크에게 최첨단 소형 로봇을 이용하여 환기창을 탐색하도록 허가하였다. 간텐브링크는 왕비의 방 남쪽 갱도의 좁은 입구로 카메라가 달린 로봇 우푸아우트(이집트어로 ‘길을 여는 자’)라는 특수 소형 로봇을 들어가게 했다.

로봇은 약 64미터를 전진하여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소형문 혹은 마개와 같은 물체에 도달했다. 이 마개에는 두 개의 구리 핀이 붙어 있는데 아마도 손잡이로 추정된다고 발표되었다. 이 문을 촬영한 비디오는 1993년 4월 런던의 《인디펜던트》지에 게재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당시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고고학자들은 이집트 최대의 피라미드 내부에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방의 입구를 발견했다. (중략) 몇 가지 증거에 의하면 이 방에 쿠프 파라오의 보물이 소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보물은 거의 틀림없이 완전한 상태로 있을 것이다. 방의 입구는 폭과 높이가 20센티미터에 길이가 65미터인 긴 통로 끝에 있다. (중략) 이 통로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별을 가리키며….’

이 내용이 발표되자 전 세계의 매스컴은 피라미드의 열기로 들끓었다. 런던의 《더타임》지에서는 ‘비밀의 방이 피라미드의 수수께끼를 풀어줄지도 모른다’고 했다. 파리의 《르몽드》지는 「피라미드의 미스터리」라고 전했으며 《로스앤젤레스타임》지 역시 「피라미드의 미스터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견에 대해서 간텐브링크로 하여금 갱도를 탐사하게 했던 독일 <고고학연구소>조차 의문을 제기하였다. 연구소 측은 ‘갱도 끝에 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난센스다’라고 단호히 발표한 것이다.

우푸아우트가 통로를 탐사할 때 발견된 입구를 감안하면 대피라미드 안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비밀의 공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이들의 논쟁이 가열되자 독일 탐사 팀에게 대피라미드 탐사 재개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보내 시끄러운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집트가 대피라미드의 발굴을 허가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파라오의 안식을 해칠 수 없다.’


출처 : 만다
글쓴이 : 티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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