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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白頭山]

호남인1 2011. 12. 23. 08:55

 

 

 

 

 

 

 

 

 

백두산[白頭山]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 성[吉林省]에 걸쳐있는 산.

 

높이 2,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중국 지린 성 안투 현[安圖縣] 얼다오바이허 진[二道白河鎭]과의 국경을 이룬다. 해방 당시까지 최고봉은 병사봉(2,744m)으로 측량되었으나, 현재는 장군봉으로 이름이 바뀌고 해발고도도 2,750m로 다시 측량되었다.

북동에서 남서 방향의 창바이 산맥[長白山脈]과 북서에서 남동 방향의 마천령산맥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화산이다. 화산폭발에 의해서 덮인 부석(경석이라고도 함)이 회백색을 나타내며, 꼭대기는 1년 중 8개월 이상 눈에 덮여서 희게 보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창바이 산[長白山]이라고 하며, 만주어로는 '귀러민산예아린'이라고 부르는데 '귀러민'은 길다(長), '산예'는 희다(白), '아린'은 산을 의미한다.

 

 

문헌에 나타난 백두산 최초의 이름은 〈산해경 山海經〉에 불함산(不咸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단단대령(單單大嶺)·개마대산(蓋馬大山)·태백산(太白山)·장백산(長白山)·백산(白山) 등으로 불렸다.

한국의 문헌에서 백두산에 관한 기록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三國遺事〉 기이편에 태백산(太伯山)이란 이름으로 처음 나타나며, 〈고려사〉에도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했다"하여 '백두산'의 명칭이 문헌상에 처음 기록되었다.

한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본격적으로 숭상한 것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고 추정된다. 백두(白頭)라는 이름은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 東國名山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 林下筆記〉 등의 문헌에 의하면 백두산의 산정이 눈이나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4계절 희게 보여서 희다는 뜻의 '백'(白)자를 취하여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 천지

 

 

백두산의 범위는 천지 중심의 마그마 활동에 따른 화산암의 분포지로 한정해보면 현재 북한측의 면적은 8,000㎢로 전라북도의 면적(8,052㎢)과 비슷하고 개마고원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중국측의 백두산 화산암의 분포지까지 합하면 3만㎢에 이른다. 또한 해발고도 1,800m까지는 완만한 경사(8~12°)를 나타내어 방패 모양의 순상화산이나, 1,800~2,500m는 급경사로 종 모양의 화산을 이룬다. 백두산의 중앙부에는 천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2중화산의 외륜산에 해당하는 해발고도 2,500m 이상의 봉우리 16개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회백색의 부석으로 덮여 있다.

이 가운데 6개 봉우리는 북한에 속하며(최고봉 2,750m의 장군봉), 7개는 중국에 속하고(최고봉 2,741m의 백암봉), 3개의 봉우리는 국경에 걸쳐 있다. 따라서 천지 수면에서 장군봉 꼭대기까지는 600m의 비고로, 백두산 중앙부는 넓고 파란 호수 주변에 비고 약 500m의 회백색 산봉우리들이 둥그렇게 둘러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출처: 브리태니커

 

 

 

 

한민족과 백두산

한민족에게 백두산은 민족과 국가의 발상지이며, 생명력있는 산으로서 민족의 성산(聖山)·신산(神山)으로 숭앙되어왔다.

고조선 이래 부여·고구려·발해 등이 백두산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백두산 주변의 숙신족·읍루족·말갈족·여진족·만주족 등도 그들 민족의 성산으로 숭앙하여 역사화·전설화·신격화했다.

풍수지리에서는 지세를 사람의 몸에 비유하여 이해하기도 하는데 백두산을 '기'(氣)가 결집된 머리로, 낭림-태백-소백 산맥을 백두산의 기가 전달되는 등뼈산맥으로서 백두대간 (白頭大幹)으로 인식했다.

 

그밖에 청나라의 번영도 태산(泰山)·장백산(長白山) 지맥설(支脈說)을 통해서 풍수지리상으로 백두산의 정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백두산은 한민족뿐만 아니라 북방 이민족의 정신적 구심점과 활동무대가 되어왔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국경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17세기 중엽 청나라는 백두산을 장백산신(長白山神)에 봉하고 출입·거주를 제한하는 봉금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이 두만강을 넘어 이주·개척하자 백두산을 그들의 영토로 귀속시키려고, 1712년 일방적으로 백두산정계비 를 세웠다(→ 백두산정계비). 그 내용 가운데 토문강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청나라와의 사이에 영토분쟁이 발생했으며, 간도 및 녹둔도의 영유권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1909년 청·일 간에 체결된 간도협약으로 두만강이 국경선으로 결정되었으며, 지금 백두산은 천지까지도 분할되어 천지 북쪽 2/5는 중국측에, 남쪽 3/5은 북한측에 속한다.

 

 

 

 

 

 

백두산 여정개요

 

백두산은 함경남도, 함경북도와 중국 동북 지방의 길림성이 접하는 국경에 걸쳐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높이가 2,744m이다.

백두산은 휴화산(休火山)으로, 그 총면적은 약 8,000㎢에 달하여 전라북도의 전체 면적과 거의 비슷하다.산의 북쪽으로는 장백산맥(長白山脈)이 북동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뻗쳐 있으며, 백두산을 정점으로 하여 동남쪽으로는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이 대연지봉(大密脂峰, 2,360m), 간백산(間白山, 2,164m), 소백산(小白山, 2,174m), 북포태산(北胞胎山, 2,289m), 남포태산(南胞胎山, 2,435m), 백사봉(白沙峰, 2,099m) 등 2,000m 이상의 연이은 봉우리를 이루면서 종단하고 있다.

 

한편, 동쪽과 서쪽으로는 완만한 용암대지(熔岩臺地)가 펼쳐져 있어 백두산은 한반도와 멀리 북만주 지방까지 굽어보는 이 지역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백두산의 지명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문헌에 의한 최초의 이름은, ‘불함산(不咸山)’으로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북경(大荒北經)’에는,“넓은 황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불함이라고 이름한다. 숙신 땅에 속한다.(大荒之中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라고 하였다.

우리 나라의 기록으로는,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서 백두산을 ‘태백산(太伯山)’이라 하였고, ≪고려사≫ 광종 10년조에는,“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 쪽에서 살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서, ‘백두산’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백두산의 명칭은 이처럼 불함산으로부터 시작하여, 단단대령, 개마대산, 도태산, 태백산, 백산, 장백산, 백두산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어왔으나, 여러 명칭의 공통점은 ‘희다〔白〕’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백두산은 최근까지 활동한 휴화산인데, 산세가 험준하고 지형이 복잡한 데다가 대륙 쪽으로 열려 있고, 한반도 쪽은 고원과 2,000m 이상의 고산지가 둘러 있는 형태여서, 독특한 산지 기후와 자연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특히 백두산 천지는 흔히 용왕담(龍王潭)이라고도 하고, 중국에서는 용담(龍潭), 온량박(溫凉泊), 도문박(圖門泊)이라고도 하는데, 남북의 길이 4.9㎞, 동서의 너비 13.4㎞, 집수 면적 21.41㎢, 수면의 면적 9.2㎢, 수면의 둘레 13.11㎞, 수면의 높이는 2,155m이다.천지의 가장 깊은 곳은 312.7m이고, 평균 수심은 204m에 이른다.

 

천지의 물은 북쪽의 화구벽, 곧 승사하(乘笑河)로 뚫린 달문(眷門)을 통하여 넘쳐흘러 비룡폭포(飛龍瀑布, 중국에서는 장백폭포라고도 함)를 이룬다.폭포의 높이는 68m로서 이 물이 이도백하(二道白河)를 이루어 송화강(松花江)의 원천을 이룬다.

 

전세계적으로 높이 2,155m의 산정에 천지처럼 큰 호수를 가진 산은 오로지 백두산뿐이다.

천지의 물은 강수량으로 보급되는 것이 약 60%이고, 지하수로 보급되는 것이 약 40%인데, 이렇게 이루어지는 천지의 총 적수량은 20억 400만㎥이다.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높이 2,500m 이상의 산봉우리가 16개가 있는데, 이 산봉우리들의 명칭이 우리 문헌에는 병사봉을 비롯하여 망천후(望天吼), 비류봉(沸流峰), 백암산(白巖山), 차일봉(遮日峰), 층암산(層巖山), 마천우(麻天隅) 등만 밝혀져 있고, 중국 문헌에 의하면 백두산의 최고봉인 백두봉(우리 나라에서는 병사봉, 또는 장군봉으로 칭함)을 비롯하여 삼기봉(三奇峰), 고준봉(孤準峰), 자하봉(紫霞峰), 화개봉(華蓋峰), 철벽봉(鐵壁峰), 천활봉(天豁峰), 용문봉(龍門峰), 관일봉(觀日峰), 금병봉(錦屛峰), 지반봉(芝盤峰), 백운봉(白雲峰), 옥주봉(玉柱峰), 제운봉(梯雲峰), 와호봉(臥虎峰), 관면봉(冠冕峰) 등의 명칭으로 되어 있다.

 

 

백두산의 기후는 수직적 분포가 뚜렷이 나타나 저지대에서 정상부까지 온대로부터 한대에 이르는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

천지 주변의 기후는 고산 기후의 특색을 이루어 겨울이 춥고 길며 바람이 세고 일기 변화가 큰 것이 특징이다.

9월 하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다음해 5월까지 눈이 내리기 때문에 겨울이 9개월이나 된다.1월 평균 기온이 -24.0℃이고, 7월의 평균기온은 10℃ 내외이다.

연평균 풍속이 초속 11.7m나 되며 12월이 특히 심하여 초속 17.6m에 이른다.바람이 가장 센 곳은 높이 2,690m 지점에 있는 풍구(風口)라는 곳이다.

백두산 일대의 지형적 장애로 인하여 습기를 가진 대기가 강제 상승되거나 서쪽에서 이동해 오던 저기압계(低氣壓系)가 지연되므로 강수량은 주변 지역보다 증가된다. 산정상부에 가까워질수록 구름과 강수일수가 증가하여 연중 청명한 날씨는 40여 일 정도에 불과하다.

 

백두산에는 1,400여 종의 식물과 400여 종의 동물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도별로 높이 500∼1,050m 지대에는 낙엽송, 가문비나무, 사시나무 등 침엽수와 자작나무, 황철나무, 분비나무 등 활엽수가 함께 혼재하는 혼합림지대이며, 높이 1,750m까지는 침엽수림지대이다.

높이 2,100m까지는 관목림 지대(灌木林地帶)로서 여름 최고 기온이 10℃를 넘지 못하고 토양이 척박한 데다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 이깔나무, 월하나무 등이 주요 수종을 이룬다.

높이 2,100m 이상은 동토 지대로서 겨울 기온이 -45℃ 미만이며 연중 300일 이상 흐린 날이 계속되고 강풍이 불기 때문에 수목의 성장은 어려우며 털진달래, 풍모버섯, 바위솔, 둥근잎버드나무 등이 자생한다. 이른바 한 대림지대(寒帶林地帶)이다.

 

백두산에 서식하는 동물로는 백두산 호랑이를 비롯하여, 꽃사슴, 수달, 표범, 곰 등이 있으며, 130여 종의 텃새와 70여 종의 철새등 20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백두산은 산세가 장대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우리 민족의 발상지로, 또 개국의 터전으로서 숭배되는 민족의 영산(靈山)이었다.백두산에는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같이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천지(天池)를 비롯한 절경이 많은 데다가 독특한 생태적 환경과 풍부한 삼림자원이 있어 세계적인 관광의 명소로서 새로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백두산[白頭山]

 

세계에는 천상만상의 명산들이 있다.

조선의 금강산(金剛山)과 설악산(雪岳山), 일본의 후지산(富士山), 유럽 남부의 알프스 산맥과 북아메리카의 록키산맥들은 모두 관광 명승지로 소문이 높다.

중국의 오악(五嶽), 즉 동악 태산(泰山)의 웅위로움과 서악 화산(華山)의 험준함, 남악 형산(衡山)의 수려함고 북악 항산(恒産)의 그윽함, 중악 숭산(崇山)의 험준함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황산(黃山)은 기이한 봉우리와 괴석·구름바다(雲海)·온천의 4절을 자랑하고 있고, 여산(廬山)은 절벽·폭포·구름과 안개 삼절(三節)이 있으며, 연탕산(硏蕩山))은 기봉과 비포와 기이한 동굴·괴석들로 이름을 날리면서 국내외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고 있다.

 

장백산(백두산)은 세인들이 주목하는 신기한 산으로서, 5악과 함께 고대에 제사[神市]를 지내던 명산이다.

사시 눈이 쌓여 있고, 울창한 수림에 질좋은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인간 세상의 제2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의 명산 가운데서도 유독 장백산의 위도가 제일 높으며, 그 해발고도와 면적이 국내의 일반적인 명산들을 초과하고 있다.

태산의 해발고도는 1524m이고, 형산의 해발고는 1290m이며, 숭산의 해발고는 2083m, 황산은 1873m로서 장백산은 중국의 여러 명산 가운데서도 제일이며, 유럽-아세아 대륙의 동부에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이다.

그리고 항산의 전반 면적은 2200㎢이지만, 백두산(장백산)의 총면적은 8000여㎢이다. 장백산은 높고도 클 뿐만 아니라, 기이한 풍경으로 천하일경을 이루고 있다.긴 장백산맥은 동북 평원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좌우로해서 백두산 같은 높은 봉들을 남으로 넓게 펼치고 있다.

 

장백산의 주봉인 백두산은 조선반도와 중국 동북지구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서 한반도 북녘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영산이요 산천의 조종(祖宗)이 되는,예부터 한민족의 숭배의 대상이 되여 왔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산이 하나의 종교적인 대상으로 신성된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한 민족의 발원지로 그리고 나라의 개국터로 숭앙되어 온 것은 오직 백두산뿐이다.

 

그 명칭을 보면 중국에서는 장백산(長白山)이라 불리고 있는데, 예전에는 불함산(不咸山) · 태백산(太白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장백산 산명에 관한 변천을 조선왕조 정도(正祖)때 석학 다산(茶山) 정약용은 『지리대동수경조(地理大同水經條)』에서 ‘장백산은 신주(神州)의 동북에 있으며 일명 불함(不咸) · 개마(蓋馬) · 백두(白頭) · 도태(徒太) · 태백(太白) · 장백(장백) · 백산(白山) · 가이민상경 등 명칭이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러한 이름의 뜻은 빛(光) · 하늘(天) · 신(神) · 밝(明)등과 같은 뜻의 의에서 파생되어 나온 명칭들이다.

 

 

백두산은 지질학상으로는 지질 년대 제 3기말에 분출한 염기성 조면암과 그 후 제 4기 홍적기에 다시 분출한 유동성 많은 현무암으로 뒤덮인 어스피리 용암고원이 조성되어 일명 천명이라고도 불리는 고산고원을 이루고 있다.

해발 1800미터까지 수해(水海)를 이루어 정상의 봉우리는 그 이름과 같이 희백색의 경석질 사력충으로 뒤덮여 백두산은 돔형의 복잡종상 화산으로 솟아 있다.

 

『이조실록(李朝實錄)』에 의하면 선조(宣祖) 30년(1957)과 현종(顯宗)9년, 숙종(肅宗)28년(1702)에 백두산 화산이 분출하였다고 한다.

백두산 사정에는 함몰된 천지 용담(龍潭)이라고 부르는 면적 7㎢의 화산호(火山湖)사 태고의 청수(淸水)를 담고 있는데, 그 길이 4.5㎞, 너비가 12㎞, 수심이 370m, 고도가 2.26m로 장엄한 경관이 심장형으로 전개되어 잇다.

 

 

백두산 천지의 깊이는 1929년 여름 영국인 홈스의 31m설과 독일인 로젠버그의 300m이상 설, 1930년 미국인 모리츠와 영국인 부우츠 두 사람의 312.7m설이 있으나, 시대적인 증감의 수치로 310m 내외로 알려져 있다가 오늘에 이르러 370m로 확정되었다.

처지의 물은 북쪽 백암산(白岩山)과 차일봉(遮日峰)사이 달문(達文)이라고 불리는 화구벽의 틈을 통해 높이 68m의 장배곡포로 떨어져, 연연히 협곡을 따라 북쪽의 동북 평원을 지나는 송화강(松花江)상류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圖們江)도 이 천지가 원류라고 하나, 실제로 이 두 강의 원두 곡은 다만 동남쪽호반(湖畔)과 삼지연(三池淵)에서 압록강을 서쪽으로 흐르게 하고, 동쪽 적봉(赤峰)단지와 기슭에서 두만강의 원두곡류를 찾을 수일을 뿐, 송화강처럼 천지물이 원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장백산의 최고봉인 대장봉(大將峰)(일명 병사봉, 해발 2744m)을 맹주로 백운봉(白雲峰) · 망천후(望天吼) · 비류봉 · 차일봉 · 증암산(甑巖山) · 마천우(摩天隅)등의 명칭이 붙은 여러 봉들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하고, 단애벽이 되어 천지를 둘러싸면서 동남족으로 뻗어 대여진봉(大臙脂峰, 2360) · 태백산(太白山, 2164) · 소백산(小白山, 2174), 그리고 북포태산(北砲泰山, 2289) · 남포태산(南砲泰山, 2435) · 장군봉(將軍峰, 2108) · 백사봉(白沙峰, 2099)등의 거봉 웅산들이 마천령 산맥과 개마고원(蓋馬高原)의 천리천평을 이루고 있다.

 

 

이은상(李殷商)은 『한국산악간지도설(韓國山岳干支圖說)』에서 한국 태백산맥(太白山脈)북부를 동부고지 백두대간으로 소백산맥을 남부고지 백두대간으로 불러 백두대간이란 큰 줄기의 산들이 한반도를 세로 질러 흐르고, 다시 각각 이름을 붙여 간지로 분류하였다. 즉 큰줄기인 대간에서 가지로 뻗는 산맥이란 뜻으로, 백두산을 한반도 산천의 조종으로 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출처: 문화원형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