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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원형경기장 - 콜로세움(Colosseum)

호남인1 2011. 7. 23. 22:01

 

 

 

 

로마 원형경기장 

콜로세움(Colosseum)

 

 

콜로세움(Colosseum)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현재는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상(巨像:colossus)에서 유래한다.

 

 

역사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스)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를 메운 자리에 세워졌다. 공사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72년에 착공되어 8년 동안의 기적적인 역사를 거쳐 티투스 황제 때인 80년에 준공된 콜로세움은 높이 48m, 둘레 500m 등 경기장 내부의 길이 87m와 폭 55m라는, 당시에 건립된 건축물 가운데 최대의 건축물이었다.

 

티투스는 등극하기 전인 70년유대독립전쟁을 진압하고 10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환하였다. 그 중 4만 명을 동원하여 콜로세움을 건축했다는 전설이 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콜로세움은 608년까지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중세기에는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다가 그 이후에는 성당이나 궁전 등의 건축에 사용될 자제의 제공 터가 되었다.

 

 

구조

이 거대한 건축물은 4층으로 되어 있었다. 1층은 높이 10.5m의 도리아식 반원주, 2층은 높이 11.85m의 이오니아식 기둥, 3층은 11.6m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4층은 관중들이 작열하는 햇빛을 피할 수 있게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대장치를 지탱하는 벽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도 계단과 독립 공간, 즉 갈레리아가 있었다. 이 갈레리아는 이집트산 콩, 음료수 등을 파는 상인들의 휴식공간으로 많은 시민들이 여기서 조우했다. 경기장 바닥은 모래로 덮이고, 곳곳에는 사냥장의 분위기를 살려 나무와 구릉을 설치하였다. 바닥 밑에는 노예들과 맹수들을 수용하던 각종 우리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의 싸움 장면도 연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닥 전체에 물을 가두는 일이 용이하지 않아 별도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의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도미티아누스의 건축가 라비리우스라고 하기도 하고, 가운덴키우스라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단지 추측일 뿐이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콜로세움 (Colosseo, Colosseum)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은 72년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하여 8년 후인 80년에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콘크리트와 돌로 세운 이 거대한 건물은 가로, 세로가 각각 190미터, 155미터에 이르며 4단으로 된 관람석은 4만 5천 개의 좌석과 5천 개의 입석을 갖추었다. 콜로세움에는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관중들을 보호하기 위해 베라리움이란 천막 지붕을 설치되어 있었는데 지붕 가운데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어서 채광은 물론 환기구 역할을 했다.

 

관중은 지정된 입구를 통해 관람석으로 통하는 층계를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이런 좌석 배정 및 출입 통제 방법은 오늘날에도 사용된다.

 

콜로세움이란 이름은 그 앞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동상 ‘콜로소(Colosso)`에서 따 온 것으로 이는 ‘거대하다’는 뜻의 라틴어 콜로수스(Colossus)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형 원형극장은 로마에만 건설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님므, 아르르에도 있었고 로마인들이 진출한 독일, 북아프리카, 소아시아는 물론 예루살렘에도 있었다. 예루살렘의 원형 극장은 헤롯 대왕이 건설했다.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이라고 하였다. 콜로세움이 완공되었을 때, 기념 흥행으로 100일에 가까운 투기(鬪技)가 열렸다고 한다. 그러나 공사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에도 계속 이어졌고 네르바 황제와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도 개축 또는 증축 공사를 하였다. 또한 여러 차례의 벼락을 맞아, 그때마다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6세기 전반까지 행해졌다.

 

 

‘콜로세움이 멸망할 때 로마도 멸망하며 세계도 멸망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콜로세움이 건설되었을 때 로마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해안으로부터 약 18마일 떨어진 티베르 강가에서 출발한 로마는 끊임없이 외부의 적과 싸우면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국가였다.

 

그러나 국토가 확장되고 외국의 노예가 들어오면서 로마인들은 노동을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평원을 울리던 전투의 함성이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를 응원하는 아우성으로 바뀌었을 때, 로마의 진취적 기상은 이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출처: 레포트월드  

 

 

 

 

콜로세움이란-

콜로세움(Colosseo, Colosseum)은 고대 로마시대의 건조물로서 로마 제정기에 만들어진 원형 투기장이며 정식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圓形劇場)’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AD 72년에 착공하여 8년간의 공사를 거쳐 AD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콜로세움’이란 이름은 11세기부터 사용되었는데, 원래 황금 궁전 현관에 서 있다가 경기장 옆으로 옮겨 온 네로의 도금 청동상 콜로수스에서 유래한, 문자 그대로 ‘거대한 건축’이라는 뜻이다.

 

콜로세움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분명 고대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로마의 얼굴이다. 물론 이 건물이 검투사, 죄수, 맹수들의 피로 얼룩진 모래판과 가련한 희생자들을 쳐다보며 환호하는 관중 등 현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연출된 비극의 현장이었다는 점 때문에 얼핏 로마의 얼굴로 적당치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근대에 들어 교황청이 이곳을 순교성지로 지정하고 관중석 한가운데 십자가를 세워놓아, 그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크리스트교들이 순교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기정사실화했으니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처절한 박해의 현장으로 상상할 것이다.

 

 

 

◉ 콜로세움이 로마의 얼굴인 이유

ⅰ. 건축술 : 콜로세움은 수많은 아치형 천장과 견고한 벽체로 이루어진 콘크리트 벽돌조 건축의 압권이다.

ⅱ. 상징성 : 고대 로마 시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이 대형 건축물은 로마 시민들의 자부심이라 할 만큼 상징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ⅲ. 로마사회의 특성 반영 : 콜로세움이 제정기 로마 사회의 특성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듯, 콜로세움은 고대 세계의 승자 로마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 안에서 벌어진 시합들의 기원이 외국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극장 둘을 결합한 모양의 건물구조와 경기 조직은 로마 인들이 자기 세계의 속성을 바탕으로 이룩한 독창적인 것이었다. 춮처: 해피캠퍼스  

 

 

 

 

 

 

요한 스트라우스의 `천둥과 번개` O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