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숨겨진 비화 - 해인사를 지켜 낸 군인들
한국 전쟁과 해인사
해인사(海印寺)는 광복 후 한국전쟁 때 위기를 맞게 된다. 1951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대한민국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퇴각하지 못하고 남은 1천여 명의 북한군 잔당들이 해인사를 중심으로 게릴라 전을 전개했다. 이에 UN군에서는 폭격기 4대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당시 공군 편대장이었던 김영환 조종사는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소실될 것을 우려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로서 해인사는 폭격당할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현재 해인사 경내에는 그를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본문출처-워키백과/http://ko.wikipedia.org/wiki/해인사
영상출처/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62N0OQ9BLAo$
가야산 해인사(海印寺)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서 팔만대장경이 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150여 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리고 있다. 불교의 삼보(三寶) 사찰 중 법보(法寶) 사찰로 유명하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의 본존불은 석가모니이다.
역사 : 남북국 시대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했다.[1] 그들은 가야산에 초막을 세우고 참선을 했는데 등창으로 고생하던 애장왕의 왕비의 병을 낫게 해주어 애장왕이 절을 창건하도록 했다. 순응과 이정 이후 결언대덕(決言大德)이란 승려가 사찰 창건을 계속했고 주지가 되었다.
918년에는 승통 희랑(僧統希朗)이라는 당시 해인사 주지가 고려를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고려 태조가 국찰(國刹)로 삼았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속장경(續藏經)》의 간행을 시도한 곳이다.
해인사는 5차례가 넘는 화재로 인해 여러 번 중창되었으며, 그에 따라 창건 당시의 건축은 알 수 없고, 현재의 전각은 대부분 조선 말기 때의 것이며, 3층 석탑·석등 등이 현존한다. 조선 성종 12년(1481년) 이후 8년간 중건하였고,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국보로 지정된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에는 유명한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이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는 1993년에 성철 스님이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과 해인사 [편집]
해인사는 광복 후 한국전쟁 때 위기를 맞게 된다. 1951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대한민국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퇴각하지 못하고 남은 1천여 명의 북한군 잔당들이 해인사를 중심으로 게릴라 전을 전개했다. 이에 UN군에서는 폭격기 4대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당시 공군 편대장이었던 김영환 조종사는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소실될 것을 우려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로서 해인사는 폭격당할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현재 해인사 경내에는 그를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해인사의 문화재 [편집]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보 52호 해인사 장경판전과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서 조선 태조7년에 옮겨진 국보 32호 팔만대장경, 보물 제128호 반야사 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 보물 264호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 보물 제518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이 있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편집]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陜川 海印寺 藏經板殿)은 국보 제52호로, 해인사에 딸린 건물의 하나이다.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 남쪽의 것을 수다라전(修多羅殿), 북쪽의 것을 법조전(法寶殿)이라 하는데 여기에 고려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다. 그 앞 두 동의 소당에는 보판(補板)과 잡판(雜板)을 소장하고 있다.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비로자나불상 [편집]
해인사 비로자나불상은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불상이다.[1]
1200년 된 쌍둥이 비로자나불상으로서, 833년에 제작된 신라 목조 불상이다. 그동안 팔만대장경 전각의 법보전에 모셔져 있던 불상인데, 2005년 6월에 새로 금칠을 하던 과정에서 833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2]
이를 보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에 방문했으며, 대통령이 약속한 특별지원금 30여억원으로 비로자나 부처님 영구보존사업을 벌여왔으며 2년여만에 마무리됐다. 대비로전의 낙성식에 다시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였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 [편집]
- 노무현#불교와의 인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평소 불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권양숙 여사는 2002년 10월 1일 당시 대선을 앞두고 합천 해인사에 머물고 있는 조계종 종정인 법전(法傳) 스님으로부터 보살계와 '대덕화(大德花)'라는 법명을 받았다. 고(故) 육영수 여사와 같은 법명이다. 이러한 법명 수계는 불교계의 민심이 실린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불교계의 기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3] [4] 이후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3회 해인사를 방문,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다 방문을 하였다.
2003년 12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불시 방문해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총무원장 법장스님과 환담한 뒤 오찬을 함께 했다. 사패산 터널 문제에 대한 공약을 못 지키게 되었다면서 양해를 구했다.[5][6]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8월 30일 T-50 골든이글 양산 1호기 출고식에 참석했다.[7] 그리고 해인사에 들러 비행기 사고 없이 잘 날아다니고 잘 팔아달라고 부처님께 기도를 했다.[8] 취임 이래 두 번째 해인사 방문이다.
2007년 11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은 해인사 대비로전(大毘盧殿) 낙성 대법회에 참석, 축사를 하였다. 세 번째 해인사 방문이다.[9]
2009년 5월 24일 해인사 승려 300여명이 분향소를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하안거를 깨고 나와 조문을 한 것으로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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