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송 (춘양목)
학명: forma erecta
금강송은 소나무의 제왕으로 한민족과 생로병사를 함께 해왔다. 임금과 사대부의 관재(棺材)로, 속이 황금빛을 띠어 황장목(黃腸木)이라 불렸으며, 경복궁과 같은 궁궐과 천년 고찰의 대들보로 사용돼 죽어서도 천년의 영화를 이어가고 있다.
금강송은 더디게 자라 나이테가 조밀하고 송진 함유량이 많아 잘 썩지 않고 , 갈라지지 않으며 , 강도도 높아 이미 조선시대부터 우수한 목재로 인정받아 왔다.
더구나 금강송이 자라는 경상북도와 강원도 지역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황장금산(黃腸禁山)이 57곳이나 지정돼 엄격한 보호를 받아왔다. 하지만 일제시대 무차별적인 금강송 수탈 정책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금강송은 이제 전설 속의 나무로 사라져 가고 있다.
조선시대 , 궁궐재나 관재등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금강송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금강송 서식지를 황장봉산으로 지정해 엄격하게 관리했다. 19세기 말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도 강원도 지역의 질좋은 금강송이 사용됐다.
황장금표
황장금표는 황장봉산으로 지정된 지역에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는 표지로 강원도 3곳, 울진 소광리 1곳에서 금표를 확인할 수 있다. 만기요람에 따르면 전국 60여곳에 황장봉산이 지정됐고, 이 가운데 90% 이상 울진과 삼척, 설악산등 경북과 강원도 지역에 밀집해 있었다. 더구나 조선시대에는 금강송을 한주만 베어도 곤장 백대에 3년을 복역시킬 정도로 엄격한 산림 보호 정책을 폈다.
50년대 춘양, 영주, 석포를 잇는 영암선 철로가 개통되면서 금강송의 무분별한 남벌은 더욱 본격화 된다. 특히 춘양역은 금강송이 외지로 반출되는 주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강송을 춘양목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울진 소광리 금강송 숲은 산림청이 1800헥타에 걸쳐 유전 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돼 백만그루의 금강송이 고스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금강송 산지인 것이다. 특히 이곳은 험준한 지형 탓에 훼손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학곡리황장금표(鶴谷里黃腸禁標)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내의 구룡사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놓여 있는 학곡리황장금표이다. 황장목(黃腸木)의 보호를 위하여 일반인의 벌목을 금지하는 경계의 표시이다.
황장목은 나무의 안쪽색깔이 누렇고 몸이 단단한 질이 좋은 소나무로서 왕실에 올리는 특산물 중의 하나이며, 궁에서 신관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치악산은 질이 좋은 소나무가 많을 뿐 아니라 관아가 가까이 있어 관리도 유리하였고, 한강의 상류에 자리하여 뗏목으로 한양까지의 운송이 편리하여 전국에 있는 60여 개소의 황장목 보호림 가운데에도 이름난 곳의 하나였다.
금표는 작은 바위의 한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황장금표(黃腸禁標)’라는 글귀를 새긴 모습으로, 최근에 ‘금’자와 ‘표’자 사이의 윗부분에 ‘동(東)’자가 새로이 발견되었다. 구룡사 입구에서 100여m 정도 내려가면 도로가의 흙속에 일부가 묻혀 있는 1기의 금표가 더 남아 있는데, ‘금표’의 글귀 윗부분에 ‘외(外)’자가 보인다. 이렇듯 보호림 구역을 만들어 표시를 해놓는 제도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생겨난 것으로, 강원도에는 이곳 외에도 인제, 영월, 양양 등에 있다.
황장금표(黃腸禁標)와 강원도 소나무
궁궐의 건축자재 함부로 벌채 못해강원도에서는 좋은 재질의 소나무가 생산되었기에 궁궐의 건축자재로 쓰려고 함부로 벌채를 못하게 금령을 내려 여기에 금표로 표지를 했다. 이 금표를 황장금표라 했다.
강원도 내에는 소나무의 벌채를 함부로 못하게 한 황장금표도 몇 군데 남아 있지만 이외에 영월의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였기에 뒤에 금표를 세운 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 하나 산삼을 캐지 못하게 한 금표가 강원도에 있다.황장금표에 관하여는 필자가 10여년 전에 어떤 잡지에 글을 쓴 일이 있다. 그때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은 치악산 구룡사 입구의 암석에 새겨져 있는 것과 인제 절터에 새겨 놓은 것을 이 잡지에 논급하였다. 그러자 강릉시청에 근무한다는 김남규씨라는 분이 전화로 양양의 어성전 위쪽 법수치에 황장금표가 있는 것을 보았다고 알려 주었다. 이로써 우리 눈에 뜨이지 아니한 금표가 아직도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장금표는 송림에 붙이는 금표로 황장은 베었을 때 그루의 속이 황적색이 나는 재질로 좋은 소나무이기에 나라에서 필요할 때 쓰려고 금표를 붙여 일반은 벌채하지 못하게 한 소나무이다. 금표는 다 암석에 각자 하나 자연석에 각자하기도 한다.
청령포의 금표는 가다듬을 돌에 각자를 했고 인제의 금표는 판독이 가능하여, 자서계한계리(自西界寒溪里) 지동계이십리(至東界二十里)라고 읽을 수 있다. 서쪽 한계리에서 동쪽으로 20리까지를 한계로 삼고 이 안에서는 벌목을 할 수 없게 금하고 있다.
원주 학곡리의 황장금표는 하나가 아니고 2기가 인접해 설치되어 있다. 이 근방의 구룡사 입구에는 황장금표를 입증이라도 하듯 낙낙장송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황장금표는 강원도 내에서 발견된 것이 몇 있지만 삼산봉표(蔘山封標)는 한 개가 있다. 삼산봉표가 이것 말고 국내에 또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필자가 보고 들은 일이 없기에 어쩌면 국내 유일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발견된 것은 1994년으로 알고 있다. 사람이 다닐 수 없는 험준한 산의 능선에 있었기에 눈에 띄지 못하다가 임도(林道)를 새로 닦으면서 발견이 되었다.
필자도 정선군청의 지프로 임도를 통하여 가서 볼 수 있었다. 자연석 한가운데 ‘강릉부삼산봉표(江陵府蔘山封標)’라 각자하고 왼쪽에 ‘정선계(旌善界)’ 오른쪽에 ‘지명마항(地名馬項)’이라고 각자되어 있었다. 산삼은 귀중한 약재이기에 국가에서 관장을 하느라 아무나 입산하여 채취 못하도록 세운 것으로 이것도 일종의 금표임이 틀림이 없다.
여기 강릉부라 한 것은 지금의 정선의 일부가 강릉구역이었기에 그렇게 기록하였을 것이다. 이 표석이 서 있는 곳은 강릉과 정선의 경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발견된 국내 유일의 것으로 추정되기에 그 자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
인제의 한계리에서 장수대 계곡으로 20리가 황장금표 해당 구역이라 했는데 이 계곡에는 지금도 소나무의 임상(林相)이 좋고 그 옛날 여기서 벌목하여 서울로 운목하는 데는 뗏목이 이용되었다. 최근의 사정은 알 수 없으나 1980년대까지는 이곳에 떼꾼이었던 사람이 생존해 있었다. 이때는 인제 합강에서 엮어서 춘천의 소양강을 지나 서울로 갔으나 청평댐이 막히면서 인제 때는 사라졌고 인제 금표지역이었던 곳은 지금도 임상이 좋다.
강원도에는 송림으로 임상이 좋은 곳이 몇 곳 있다. 강릉지방 고가의 월림(越林)도 그 하나요, 도내에 있는 능묘(陵墓), 이를테면 영월의 단종능 주변, 삼척의 미로면에 있는 태조의 5대조 부모의 묘인 준경묘(濬慶墓)와 영경묘(永慶墓) 주변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수백년 되는 노송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능 주변이라는 특수 상황도 있겠고 삼척의 경우는 설사 벌목을 한다 해도 운목할 만한 도로가 없어 못하였을 것이다.
영월의 법흥사 경내의 임상도 좋고 강릉고등학교 주변, 관동대학 캠퍼스의 송림, 강릉 송정동의 송림, 동해안 해안의 송림들이 다 이목을 끌 만한 송림이다. 근년 우리의 난방이나 취사가 나무에서 탄이나 기름으로 바뀌면서 송림의 임상이 좋아지고 있다.
최근에 경복궁을 복원하느라 그 용재의 일부를 강원도의 산림에서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특히 양양의 서면에서 나무 찾기를 여러 번 하였다는 풍문이 있다. 앞서 서면 어성전 위쪽 법수치 인근에 황장금표가 있다는 것을 전해 들었으니 이곳에 궁궐의 용재로 쓸 만한 소나무가 있는 모양이니 역시 황장금표는 송림 잘 자란데 세웠던 것이 틀림이 없다.
강원도의 나무가 궁궐 용재로 쓰일 뻔했다는 기록은 강릉읍지인 임영지에 있다.
고종 을축(1865)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의 중건 공사를 할 때 오대산에서 길이 40척 둘레 45척 되는 기둥을 베어 보내라는 명령이 왔다. 이때 진부 오대산 일원은 다 강릉영지였으므로 강릉부사가 백성을 동원하여 이 작업을 하였다. 나무를 옮기자면 도로가 있어야 하기에 백성 500명을 동원하여 길을 닦으며 500명이 들어 나무를 끌어내 25일이 걸려 겨우 30리를 옮겨 진부에 이르렀다.
25일에 걸친 500명의 작업이 이 정도니 서울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부사가 “백성의 노고가 너무도 크고 비용이 과다하게 드니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상소를 올렸더니 “그 작업은 정지하라”는 명이 와서 그만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푸른 산림 잘 자라고 있는 송림은 이곳 사람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순화되는 심성의 요람인 것이다. 여름철 매미 소리 들리는 미루나무가 서정적이라면 겨울철 찬바람 스쳐가는 송뢰는 사색적이다. 글/최승순 강원대명예교수
꽃은 5월에 피고 암수한그루이다.
수꽃은 새가지 밑부분에 달리며 / 암꽃은 달걀 모양이고 새가지 끝에 달린다.
수꽃이삭은 둥근 통 모양이고 길이 1.5cm이며 자줏빛을 띤 갈색이고 각 비늘조각에 2개의 꽃밥이 있다. 암꽃이삭은 붉은색에서 붉은빛을 띤 자주색으로 변한다.
열매는 구과로 달걀 모양 긴 타원형이며 다음해 9월에 익는다. 50∼60개의 실편으로 이루어지며 길이 5∼6cm이다.
종자는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며 날개가 있다.
피톤치드는 수목이 내뿜는 방향성 물질인 테르텐 계통의 유기화합물이 주를 이루지만, 향기가 그 전부는 아니다.
피톤치드를 구성하는 수십 가지의 물질 중에는 향기와 무관한 성분도 있다.
피톤치드에는 휘발성인 테르펜류 이외에도 알칼로이드, 배당체, 플라보노이드, 페놀성 물질 등 비휘발성 물질도 다량 있다
피톤치드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식물에 함유되어 있는 물질로서 미생물의 번식이나 생장을 억제하는 모든 물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까지 황장목이 잘 보존되고 있는 울진군 서면 소광리와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일대는 유전자 보호림과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금강솔
강원, 경북북부 일대의 금강형, 남서부 해안지방의 중남부 평지형, 경북남동부의 안강형, 평남에서 전남에 걸친 내륙지방의 중남부 고지형, 함경도 해안지방의 북동형이 있다. 이들중 금강형이 특히 재질이 뛰어나고 진골(眞骨)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산림청은 그간 이지역을 금강송 유전자 보존림으로 지정해 오다가 1998년말 비로소 세상에 그 존재를 공개 했다.
1959년 육종림으로 지정된 뒤 1982년 천년보호림으로 지정 지금까지 사람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 480 여만평의 금강소나무 숲이 국내 최대, 최고의 소나무 원시림으로 판명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보호림 면적은 1610ha 322,000그루쯤 자생하고 있다.
5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 20여년간 이들지역의 소나무가 운반된 지역이 봉화군 춘양역에서 운반된 관계로 이때부터 춘양목(春陽木)으로 불리어 졌다.
조선조때는 심재(心材)부분이 누런 황금색을 띤다하여 황장목(黃腸木)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금강송으로 불러지고 있다.
[대왕소나무] 36번 국도상 광천교에서 25km 지점에 있으며 두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도 끝이 닿지 않는다. 지름이 1.1m 둘레는 3.5m가 넘는다. 대왕송 옆에는 금강소나무와 일반소나무의 재질을 비교하기 위한 소나무속을 잘라 전시하고 있다.
경북 문경시 주흘산 금강솔
삼거리를 뒤로하고 10분 올라가면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서쪽 문경새재 계곡 건너로 백두대간을 끌고 나가는 조령산이 마주 보인다. 전망바위를 지나 7~8분 더 오르면 쉬어가기 좋은 4~5평 넓이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이어 2분 거리에 이르면 밑둥이 한 아름이 넘는 소나무가 벼락을 맞아 쓰러져 있다. 아름드리 노송군락이 이어지는데, 금강송이 자랄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 바로 여기라고 한다.
볼수록 귀티가 나는 금강송 군락을 지나 10분 올라가면 단풍나무 군락 속으로 들어간다. 8~9분 더 오르면 돌밭길인 너덜지대로 들어선다. 너덜지대를 5~6분 오르면 남릉과 만나는 삼거리다. 잣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여기서 갈린다.
금강송(forma erecta)
간단히 '강송'이라고도하며 우에끼 박사에 의하면 금강송의 산지는 강원도 금강산부터 경북의 조령으로 이어지는 종관산맥 가운데 토양의 수분조건이 좋고 비옥한 곳에서 자란다. 줄기가 곧고 수관이 좁으며 연륜 폭이 균등하고 좁으며 목리(木理)가 곧다. 우리나라 소나무 가운데 우량 품종으로 인정받고 있다.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금강산에서 울진, 봉화를 거쳐 영덕, 청송 일부에 걸쳐 자라는 금강소나무는 우리 주위의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고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별히 붉다.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금강소나무 (金剛松) 혹은 줄여서 강송이라고 학자들은 이름을 붙였다. 춘양목(春陽木)이라고 더 널리 알려진 바로 그 나무다. 결이 곱고 단단하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예로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의 나무로 쳤다.
(명상음악 / 꿈속에서)
글/http://www.samna.co.kr/tlranf/skan027.htm
사진/ 다음카페 꽃향기많은집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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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식포럼등록 소나무속(Pinus) 20종
곰반송(黑盤松) (Pinus thunbergii for. multicaulis Uyeki)
곰솔 (海松) (Pinus thunbergii Parl.)
구주소나무 (Pinus sylvestris L.)
금강소나무(剛松) (Pinus densiflora for. erecta Uyeki) - 금강송 (춘향목)
남복송 (Pinus densiflora for. aggregata Nakai)
눈잣나무(千里松) (Pinus pumila (Pall.) Regel)
리기다소나무(三葉松) (Pinus rigida Mill.)
만주곰솔 (Pinus tabulaeformis var. mukdensis Uyeki)
반송 (盤松) (Pinus densiflora for. multicaulis Uyeki)
방크스소나무 (Pinus banksiana Lamb.)
백송(白松) (Pinus bungeana Zucc. ex Endl.)
섬잣나무 (五葉松) (Pinus parviflora Siebold &Zucc.)
소나무 (赤松) (Pinus densiflora Siebold &Zucc.)
스트로브잣나무 (Pinus strobus L.)
여복송 (Pinus densiflora for. congesta Uyeki)
은송 (Pinus densiflora for. vittata Uyeki)
잣나무(紅松) (Pinus koraiensis Siebold &Zucc.)
처진소나무(柳松) (Pinus densiflora for. pendula Mayr)
테에다소나무 (Pinus taeda L.)
풍겐스소나무 (Pinus pungens Lamb.)
소나무과(Pinaceae) | 식물도감(植物圖鑑) 2012.10.1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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