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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연못 - 노근리사건 영화

호남인1 2010. 4. 14. 09:35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깬 영화 - <작은 연못> 시사회를 다녀와서


10.04.07 09:41 ㅣ최종 업데이트 10.04.07 09:47 - 권영은 (mintherb79)

스크랩/오마이뉴스/원문주소/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59915&PAGE_CD=S0200


 

▲ 노근리 사건 현장 2008년 10월19일 지방도로를 지나다가 들른 곳 - ⓒ 권영은

 


2008년 10월로 기록되어 있는 이 사진이 다시 생각난 건 영화 <작은 연못> 때문이었다. 숱한 총알 자국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참 마음이 짠했던 그 곳, 그 위 철로가 있어 경부선 열차가 매일 같이 오가지만, 60년 전 다리 밑의 비극을 아는 이는 드물다. 더군다나 이 곳은 지방도로 위치해 있고 안내가 잘 되어 있지 않아 관심을 갖고 찾는 이 아니면 지나치기 쉽다.

 

희생자 유가족만이 애태웠던 이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4월 6일 왕십리 CGV에서 있었던 시사회에 무대 인사 차 나온 (유)노근리프로덕션의 이우정 대표  배우 문성근, 이충렬(<워낭소리> 감독 ) 홍보위원장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이우정 대표는 노근리 사건을 꼭 영화로 만들어야 겠다는 의지로 뛰어들어 백여 명의 배우와 이백여 명의 스태프의 참여를 이끌었고, 지금은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배우 문성근은 "배우를 20년 하다 보니까요, 대본은 정말 좋은데  제작자가 망설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감독과 배우가 의기투합해서 만들기도 합니다. 제작비 모금하지 않고, CG업체까지 무료로 했습니다. 시민들이 촛불 하나를 들고 역사를 밀고 온 힘이 이런 영화를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한국전쟁 60년에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드립니다. 헌정 드린다는 느낌입니다"라며 <작은연못>에 실린 많은 이들의 진심을 전했다.

 

영화를 보고 좋다고 했다가 아무 대가 없이 홍보위원장을 맡게 됐다는 이충렬 감독은 "보통 사람들이 보는 영화인과 일상생활에서 보는 영화인이 다르다"며 "옳다고 생각하고 물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기운차게 움직이는, 나름 멋과 맛이 아직까지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이번 영화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홍보를 위해 필름 구매(1만원, 자신이 기부한 돈으로 필름을 복사해 상영될 것이라고 함, 어느 상영관인지는 이메일을 통해 알려준다고), 네이버나 다음 등에 리뷰 작성( 가장 싸지만 강력한 홍보 수단), CGV에 기대되는 영화로 투표(아직 6편 중 3위), 이 세가지를 관객에게 부탁했다.

 


▲ <작은 연못> 시사회장에서 (유)노근리프로덕션의 이우정 대표 배우 문성근, 이충열(워낭소리감독 ) 홍보위원장 무대 밑 인사와 영화 소개 - ⓒ 권영은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평화롭게 사는 마을이 전쟁터가 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마을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게 되고 이미저리 피난 끝에 전선 밑으로 민간인도 통과시키지 말라는 명령에 의해 다리 밑에서 미국들에게 무참히 학살 당한다.

 

영화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사건에 주목하여 만들어진 영화지만 유족자들의 상처를 덧낼까 염려한 감독의 배려 때문인지, 지나친 극적 요소들은 배제되어 있다. 드라마보다는 재현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러닝타임을 30분으로 압축시켜 스펙터클한 구성이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지나치기도 했지만 단선적인 사건 구성에 담고 있는 가공할 만한 아픔, 폭력성을 감안하니 관객을 위해 흥미로운 구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의미 없어 보였다. 감독, 배우가 무료로 참여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고 알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취지까지 보탠다면. 

 

영화 속에서는 142명 모두가 주인공인데, 그리고 대부분이 죽는다. 포스터 속의 저 사람도, 저 아이도, 저들도. <작은연못>은 영화 속의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죽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깬 영화다. 이들의 피난, 죽음 뒤에 깔리는 음악, 김민기의 <작은 연못>이 그토록 잘 어울릴 수 없었다. 해맑은 아이들이 단조로 부르는 노래 또한 애잔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이 불러대는 노랫소리가 청아할수록, 그 슬픔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김민기 - <작은 연못>

 

1.깊은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속에 붕어 두마리 서로 싸워

  한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여린살이

  썩어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속에선 아무것도 살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2.푸르던 나무잎이 한잎 두잎 떨어져

  연못 위에 작은배 띄우다가 물속 깊이

  가라 앉으면 집잃은 꽃사슴이 산속을

  헤매다가 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들게 되죠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휘윅 지나간 후에 검은 물 만

  고인채 한없는 세월속을 말없이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아쉬운 것은 연기자들의 연기가 영화보다는 연극에 가까워 어색했다는 점이다. 한데 둥그렇게 둘러앉아 전쟁이 날까 걱정하는 부분에서는 여러 배우들의 동작들이 비슷했다는 점도 밋밋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문소리, 전혜진의 연기는 돋보였다. 실제 피난민처럼, 진짜 남편을 잃은 아낙처럼 정신을 놓으며 뛰어가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그녀는 정말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또 하나 돋보인 인물을 꼽자면 '아이들'이었다. 이들을 아역 배우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나 같이 쌍꺼풀 없는 눈에 순박한 외모는 어른 못지 않은 세련된 외모와 유려한 말솜씨의 아역배우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검은 눈동자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당황, 슬픔, 분노가 나타났다. 처음에 "지지배야"하며 어색하게 연기하던 아이가 영화 끝에는 실제 전쟁을 겪고 훌쩍 커버린 아이처럼 진중해 보였다. 장난스럽던 웃음보다는 인생의 뭔가를 안다는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

안타까운 것은 이 아이들들의 눈동자에 담긴 전쟁이 지금도 어딘가에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죽음, 상실 등이 오늘에도 반복되고 노근리 민간인 학살과 같은 아픔이 반복재생되는 상황이 짚혀지는 까닭에 '영화는 영화다'라고 쉬이 덮을 수 없다. 

 

 ▲ 작은연못 포스터 이들의 웃음이 환해서 더 짠하다 - ⓒ 권영은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老斤里良民虐殺事件, No Gun Ri massacre)은 한국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 기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1950년 7월 26일에서 1950년 7월 29일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교에 접근하고 있던 한국인 피난민 중에 조선인민군이 섞여 있다고 의심하여, 피난민을 철교 위에 모아 공군기로 기총소사하고, 달아나는 사람은 쫓아가서 사살한 사건이다. 이 때문에 300여 명의 민간인이 피살되었다. 가해자들의 은폐로 오랫동안 덮여 있었지만, 1994년에 살아남은 주민이 저서를 출판하였고, 1999년 9월 9일 AP통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29일 주한미군이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2004년에는 사건의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이 사건은 반미 감정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났던 경부선 노근리 쌍굴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출처 :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깬 영화 - 오마이뉴스